우덜 사는 세상 구갱 쪼께 하실라요?
우덜 사는 세상 구갱 쪼께 하실라요?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8.07.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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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도 맑고 차가운 계곡물 흐르는 곳
울창한 산림에 사계절 등산객 끊이지 않아
해마다 찾는 이 늘지만 지역경제는 글쎄?
북하면 신성2리 남창마을 이재호 이장
북하면 신성2리 남창마을 이재호 이장이 마을 뒤 우뚝솟은 홈바위를 가리키고 있다.
북하면 신성2리 남창마을 이재호 이장이 마을 뒤 우뚝솟은 홈바위를 가리키고 있다.

올 들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운 한해가 될 거란 전망이 심심찮게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7월초부터 시작된 폭염은 벌써부터 사람들을 계곡과 바다로 내몬다. ‘여름계곡’을 꼽자면 전국 어느 곳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지역의 대표 계곡이 있다. 바로 남창계곡.

북하면 남창계곡은 7월 중순에 접어들면서부터 때 이른 폭염을 피해 몰려든 피서인파에 평일에도 주차공간이 없어 장시간을 헤맬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맑은 계곡물이 시원하다 못해 차가울 정도라는 이곳 남창계곡은 물도 맑고 깨끗하지만 편백과 삼나무가 울창한 산림과 아름다운 풍광 또한 일품이라 해마다 이곳을 찾는 피서객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듯 많은 피서객이 이곳을 찾지만 정작 주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하소연한다.

마을주민 김병선씨가 남창계곡을 설명하고 있다.
마을주민 김병선씨가 남창계곡을 설명하고 있다.

북하면 신성2리 남창마을 이재호(55)이장은 전남대 수련원 앞 일부 식당과 몇 안 되는 펜션과 식당 빼고는 이곳 계곡을 찾아오는 피서객과 등산객들은 저마다 외지에서 물품을 구매해 이곳에서 놀다갈 뿐 실질적인 관광수입은 올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는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청정지역이기도 하고 계곡 중앙에 위치한 수련원과 주변 시설은 전남대와 단체의 소유이고 국립공원이 아닌 지역도 그린벨트에 묶여 개발이 허용되지 않아 그렇다고 한다.

올해로 3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이재호 이장은 마을이 워낙 산세 좋고 물 맑은 청정지역이다 보니 이 마을에 이주해오려는 사람은 많지만 집을 내놓으려는 사람이 없어 귀촌인구 유입도 수월찮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개발마저 제한돼 있어 더욱 어렵다고. 덕분에 청정한 자연환경을 보전하며 살 수 있어 좋지만 넓고 큰 마을 규모에 비해 가구 수는 25가구 65명 남짓이 남창마을 주민의 전부다.

취재진이 남창 계곡을 찾았을때 계곡을 찾은 탐방객들이 한창 물놀이에 빠져 있다.
취재진이 남창 계곡을 찾았을때 계곡을 찾은 탐방객들이 한창 물놀이에 빠져 있다.

남창에 반해 귀촌했다는 카페 사장님

이 이장은 이곳 남창은 여름뿐 아니라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워 언제든 찾고 싶은 곳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광주에 살다 언젠가 들른 이 마을이 좋아 이곳으로 이사와 카페를 경영하는 주민 이은희(55)씨 역시 9년 전부터 이곳 남창에 반해 “귀촌을 결심하게 됐”노라며 남창 사랑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역시 서울에서 공직하다 정년퇴직 후 누이가 살고 있는 이곳에 와 정착하게 됐다는 주민 김병선(69)씨도 남창마을을 전국에 알리는 일등 홍보맨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김 씨는 카페와 블로그 등을 통해 사계절 아름다운 남창계곡 곳곳을 알리고 홍보하며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취재진이 찾은 이 날도 김병선 씨는 이 이장과의 인터뷰 뒤에도 마을 곳곳을 함께 둘러보며 소개해 주는 등 든든한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 김 씨는 안내도중 남창 계곡을 찾는 피서객들에게 반드시 당부할 말이 있다면서 “우리 마을을 찾아 휴식을 취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가는 건 좋은데 자신들이 가져온 음식물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 가줄 것을 당부했다. 여름이면 특히 수박껍질 등을 계곡 등지에 버리고 가는 얌체족들 때문에 주민들이 이를 치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울창한 삼나무숲을 자랑하는 남창계곡은 한 여름에도 찬바람이 지나갈 정도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준다.
울창한 삼나무숲을 자랑하는 남창계곡은 한 여름에도 찬바람이 지나갈 정도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준다.

대몽항쟁에 빛나는 ‘입암산성’

南倉이라는 지명은 입암산성에서 사용한 남쪽창고가 이 마을 계곡에 있었다 하여 남창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전남대학교수련원에서 장성새재로 올라가는 길목 오른쪽으로 약 1.5km 더 올라가면 몽계폭포를 접할 수 있다. 기암절벽과 울창한 산림 사이에 있는 이 폭포는 세 줄기로 흘러내리는 와폭으로 좌우경관이 아름다우며 밑에는 넓은 암반이 깔려 있다. 폭포입구 자연석에 하곡석문과 몽계폭포라는 정하곡 선생 친필 각자가 있다.

남창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1972년 전남 지방기념물 제 2호로 지정된 입암산성이 있다. 전라남·북도 경계를 이루는 전남 최북단인 입암산(해발 687m) 정상에 있는 성이다. 산세가 험준하여 예부터 전략요새지로 알려진 곳이다.

[고려사절요]에는 고종 43년 3월에 송군비가 당시 남해안에 침입한 몽고군을 막기 위해 남하했다가 주민들과 함께 입암산성에 입성하여 몽고군을 대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1593년(선조 26년)에 장성현감 이귀가 수축하면서 포루와 군량창고를 축조했으며 1653년(효종 4년)에는 현감 이유형이 성문2, 포루4, 암문3개와 둘레를 2,795보로 개축했다. 1677년(숙종 3년)에 장성부사 홍석구가 95파를 더 쌓았다. 정유재란 때에 이 곳 성의 별장인 윤진(尹軫)이 왜적과 싸우다 순직하기도 했다. ‘윤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이 호남으로 쳐들어올 것을 염려하여 조정에 입암산성의 재정비를 건의했으며 정유재란때 왜적이 장성으로 쳐들어오자 입암산성에서 의병 100여명을 모아 끝까지 항쟁하다 순직하였고 직하였다고 이후 영조 18년(1742년)에 이곳 입안산성에 순의비를 세워 그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장성새재 넘어가는 계곡옆 숲길.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몽꼐폭포와 입암산성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장성새재 넘어가는 계곡옆 숲길.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몽꼐폭포와 입암산성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녹두장군 얼 서린 곳

또한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공주 우금치에서 패한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과 그 일행이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1894년 11월 29일 피신했던 곳이라고도 전해진다.

당시 입암산성은 별장 이춘선(1845~1896)이 지키고 있었는데 전봉준 일행을 체포하지 않고 오히려 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날 백양사 청류암에서 다시 하룻밤을 지낸 전봉준 일행에게 기별을 보내 관군의 추격을 피하도록 도왔다고. 관군의 추격을 피해 순창 피노리로 피신한 전봉준 일행은 재기를 노렸으나 믿었던 동지의 밀고로 결국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후 다음해 3월 처형되고 만다.

사철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이 흐르는 곳. 남창.
사철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이 흐르는 곳. 남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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