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통골 계곡' 장성 제일의 명소로 떠오를 것
'물통골 계곡' 장성 제일의 명소로 떠오를 것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8.07.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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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성 이장 "10월쯤이면 개발 청사진 나올것"
제 1회 전남 마을숲 가꾸기 콘테스트 최우수상
북하면 성암2리(명치.용동마을) 강희성 이장
북하면 성암2리 명치마을 강희성 이장이 제1회 전남 마을숲가꾸기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팻말 앞에서 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북하면 성암2리 명치마을 강희성 이장이 제1회 전남 마을숲가꾸기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팻말 앞에서 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마을 뒤 물통골 계곡을 장성 제일의 관광명소로 개발하겠습니다!” 북하면 성암2리(명치·용동마을) 강희성 이장(64)은 이곳 명치·용동마을 물통계곡을 다녀간 사람들마다 한결같이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며 이 아름다운 계곡이 관광장성이 내세울만한 명소로 새롭게 자리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희성 이장에 따르면 “마을뒤 물통골 계곡은 제주 올레길 못지않은 천혜의 쉼터로서 이곳을 오르내리는 구간은 지친 도시민들과 인근주민들에게도 각광받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2시간 남짓한 산행코스에는 제1·제2·제3폭포라 불리는 상통·중통·하통으로 이뤄진 용남폭포(용수폭포)가 3개 있는데 옛날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 제3폭포에서 물을 맞고 병이 나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광주·담양 등지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물을 맞으러 찾아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무속인들이 이곳 폭포를 점령하다시피 하면서 시멘트로 제당을 짓고 움막을 설치하고 기도를 드리면서 폭포주변을 오염시킬 뿐 아니라 심지어는 폭포수의 물길마저 바꿔 놓는 등 훼손하고 있어 마을 주민과의 마찰을 빚고 있다.

강 이장은 “장성군 관광과에서도 올해 이 계곡에 대한 조사 용역조사를 통해 물통골 계곡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았다고 말하고 늦어도 올 10월쯤에는 구체적 개발안이 나올 것으로 안다”며 “결과가 하루라도 빨리 나와야 이곳 계곡에 대한 보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해 물통골 개발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당산나무와 계절꽃이 어우러진 마을입구에서 주민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당산나무와 계절꽃이 어우러진 마을입구에서 주민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계절 찾고 싶은 아름다운 마을

강 이장은 또 명치마을은 지난 2016년 전남 50개 마을이 참가한 제1회 마을숲가꾸기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강 이장은 “마을 입구 공터부지가 예전에는 생활쓰레기 등으로 몸살을 앓았었는데 이곳이 푸른숲으로 가꾸고 사계절 아름다운 식물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길로 변모하자 처음엔 반대하던 주민들도 이제는 모두가 즐기고 아끼는 공간이 됐다면서 마을 주민뿐 아니라 주변 마을에서도 일부러 마실을 올 정도로 아름다운 마을이 됐다고 흐뭇해한다.

강희성 이장은 이곳 명치마을 토박이다. 스무살 무렵 청운의 꿈을 안고 광주에서 사업을 시작해 제법 성공한 듯 했으나 사업이 한창 번성하던 시기 80년 광주항쟁이 발발하고 나자 광주경제가 마비되고 장 이장의 사업도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런데다 마침 강 이장을 만나러 장성에서 올라온 강 이장의 어머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강 이장은 81년 사업을 모두 접고 고향으로 귀향하게 되었다고.

물통계곡 제3폭포. 옛부터 이곳을 찾는 주민과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엔 무속인들이 물길바저 바꾸는 등 보전이 시급한 실정이다.
물통계곡 제3폭포. 옛부터 이곳을 찾는 주민과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엔 무속인들이 물길바저 바꾸는 등 보전이 시급한 실정이다.

역경 딛고 묵묵히 앞만 보고 살아

강 이장은 고향에 내려와서도 한동안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고향에서 끌어 모은 돈으로 벌였던 사업마저 망하고 홀어머님마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마치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빚어진 일 인양 자책감에 시달렸으며 만나는 동네이웃마다 왠지 질책성 시선을 주는듯했다며 당시의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강 이장은 어떻게든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버티며 오로지 앞만 보고 살았다고 한다. 강 이장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땐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살아왔다”고 한다. 그 무렵 이장생활도 3년 여간 했다고.

80년 소값 파동 등을 거치며 그 시절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두 동생 뒷바라지 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는 강 이장은 “젊었으니까 그런 시련도 있는 거라 생각하며 그것이 결코 고생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노라며 여유로운 미소를 던진다. 이어 농업이 예전에 비해 수익금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2만여 평의 논밭과 과수원을 경작하며 부지런히 살다보니 ‘먹고는 살만하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날이 가물어도 이곳 계곡물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날이 가물어도 이곳 계곡물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남부럽지 않게 자라준 자녀들

누구도 원망치 않고 삶에 순응하며 성실하게 산 강 이장은 자식농사도 잘 지었다. 두 아들과 딸들 모두 번듯한 직장에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어 강 이장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둘째 아들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국가직 7급과 지방직 7급에 응시해 모두 합격했는데 지방직 면접이 먼저 잡힌 바람에 전남도공무원에 몸담게 됐다고. 지금은 구례군청에 재직 중이라고 한다.

부자간 정리도 남다르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도 거실에 널린 장난감을 보고 손자들과 함께 사는 줄 착각하고 여쭸더니 큰아들 내외가 주말이면 아이들 데리고 찾아와 아이들 장난감이 이렇게 수북이 쌓였다고 한다.

명치마을 부근에 꿩이 엎드리고 있는 명당이 있다고 전해오는데 그 자리가 마을 뒤편의 손씨묘라도 하고 마을 좌측의 서씨묘라고도 하는데 서씨묘 바로 앞 길가에 콩바위(고인돌)라고 부르는 검고 둥근 바위가 있는데 이 콩을 먹으려는 꿩을 매(마을 뒤에 매봉이라 불리는 봉우리가 있다)가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어 콩을 먹지 목하고 울고만 있다하여 鳴雉마을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 남자들은 단명하고 반대로 여자들은 장수한다고 믿어왔다고. 언제부턴가 마을사람들은 꿩을 보호하기 위해 망주를 세워 액운을 막았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이 콩바위라 부르는 고인돌. 마을에 새길이 나면서 사라질뻔한 위기에 처했다가 보존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요구로 본래 있던 자리에서 비켜나 다른곳에 세워졌다.
마을사람들이 콩바위라 부르는 고인돌. 마을에 새길이 나면서 사라질뻔한 위기에 처했다가 보존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요구로 본래 있던 자리에서 비켜나 다른곳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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