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편집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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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8.08.29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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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없는 영화 ‘이산가족 상봉과 이별’
그들의 통곡과 피눈물을 멈추게 하라

과거에 영화를 선전하면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어쩌고 하면서 열을 올리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영화의 선전이 아닌, 실제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한국에만 있다. 바로 이산가복 상봉의 현장이다. UN 가입국 기준으로 193개국이 있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비극을 말해주는 것이 이산가족 상봉장이다.

지난주 사흘 동안 한반도에서 펼쳐진 이 드라마는 눈물 이외에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현장에 가 보지 못한 국민들은 TV로 이 분들의 눈물을 지켜볼 뿐이지만 남북의 모든 국민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70년 동안 그토록 목이 말랐던 핏줄과의 상봉. 어쩌면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이별.

죽기 전에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한 핏줄의 혈육. 이젠 누구에게 어떻게 하소연하며 무작정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이산가족들.

그들은 하염없는 통곡을 했다. 얼굴과 얼굴을 비비며 손과 손을 부여잡고, 눈과 눈을 비비며 서로 잊지 않기 위해, 잊히지 않기 위해 몸부림하는 장면들은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살아갈 우리들에게 반드시 끝 마쳐야 할 숙제를 주고 있다.

흐르는 정을 어쩌란 말이냐. 누가 우리를 갈라놓는 단 말이냐. 참으로 기가 막힌 질문이고 애절한 간청이며 끊을 수 없는 통곡이다.

불꽃처럼 짧은 사흘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휴전선을 넘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

"다시 만날 날이 또 있겠지? 이게 무슨 불행한 일이여. 가족끼리 만나지도 못하고…"

남측 동생 박 유희(83) 씨가 이별을 앞두고 울기 시작하자 북측 언니 박 영희(85) 씨는 "통일이 되면…"하고 조용히 달랬다.

그러나 유희 씨는 "그 전에 언니 죽으면 어떻게 해" 라며 끝내 오열했고, 영희 씨는 "내 죽지 않는다, 죽지 않아"하며 동생을 다독였다.

26일 오전 10시부터 3시간 동안 남북 이산가족들의 작별 상봉과 공동 중식이 진행된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은 다시금 긴 이별 앞에 놓인 가족들의 울음으로 눈물바다가 됐다.

"아이고, 아이고", "기어이 오늘이 왔구나"하는 이별을 앞둔 통한의 통곡 소리도 이어졌다.

북측 오빠 정 선기(89) 씨와 남측 여동생 정 영기(84) 씨 남매도 이날은 만나자마자 오열했다. 선기 씨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내가 미안하다"고 했다. 누가 누구에게 미안한지 한탄스러울 뿐이다.

남측 최고령 참가자인 강 정옥(100) 할머니는 북측 동생 강 정화(85 )씨가 팔을 주물러주자 "아이고 감사합니다, 같이 삽시다"라며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정화 씨는 "그러면 얼마나 좋겠수. 마음은 그러나 할 수 없지, 작별해야 해…"라며 아쉬운 마음을 애써 추슬렀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런 드라마의 각본을 썼던 것인가. 그 계기는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비극의 시작이자 비극의 종말이었다.

하지만 단지 한 사건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전쟁의 역사가 광신적인 정치가들에 의해 자행된 것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한국전쟁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본다면 ‘너에게만 책임이 있어’ 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남과 북, 어느 한쪽에게만 지금 이산가족의 고통의 책임을 떠넘길 수만은 없다. 결혼과 이혼은 결코 한쪽만의 생각으로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과거 북한 김일성 정권이 그런 단순 무식하고 오만한 방법으로 휴전선을 긋고 남북을 가로막았다면 그 시대를 살았던 남한 정권의 책임자들은 뭣하고 있었느냐고 반문하고 싶은 것이다.

과거 70년 동안 양쪽의 위정자들은 처음에 십년, 그 다음에도 십 년, 다음에도 십 년을 거듭하면서 정권 유지에 몰입해 오다가 지금까지 이산가족의 고통의 목소리는 듣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이 철권통치를 하고 무식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면 이런 상황을 타파하지 못하고 방관하거나 역이용하는 남한의 정권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책임이 크다면 위정자들의 책임이지만 그런 위정자를 두고 봤던 주권자인 국민들의 책임도 없다고 말할 순 없다.

다행히 대한적십자사가 주최가 되어 이 같은 행사를 면면이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안도하고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올해 안에 이 같은 상봉이 한 번 더 예정돼있다는 소식으로 위한 삼아야 할까.

67년을 기다려 사흘을 만나고 다시 긴 이별을 고해야 했던 노부부. 첫 만남에서 “담담했다”던 노부부 역시 헤어질 때 흐르는 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만남을 뒤로하고 또 이별하는 그들이 작별상봉에서 남긴 말을 기억하자.

“경의선 연결되면 제일 먼저 기차 타고 평양 갈 테니까 그때 꼭 다시 만납시다. 그때까지 살아있어요”

아흔이 넘은 그분들보다 살아있을 확률이 높은 우리는 그분들의 약속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남북통일이 해답이다.

/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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