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나무 재배하며 4대가 함께 오손도손”
“포포나무 재배하며 4대가 함께 오손도손”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8.09.04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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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치료 효과 좋은 마을 뒤편 온천수
미륵불 신앙, 효자전설 등 전설 많은 마을
북이면 원덕1리 ‘원덕마을’ 강규원 이장
북이면 원덕마을 강규원 이장이 정성들여 재배하고 있는 포포나무옆에 섰다.
북이면 원덕마을 강규원 이장이 정성들여 재배하고 있는 포포나무옆에 섰다.

“우리 마을이요? 지금은 도회지로 많이들 나가 주민 숫자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기는 했지만 몇 년 전 부터는 귀촌해서 들어오는 주민들도 꽤 있고 예로부터 참 살기 좋고 자랑거리 많은 마을입니다.”

산세 좋고 물 좋은 마을 원덕에서 4대가 함께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원덕1리 강규원 이장(53)은 70여마지기의 논농사와 7마지기 남짓의 밭농사를 경작하며 아직도 정정하신 88세의 노모, 큰아들내외와 한창 재롱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는 초등학교 1학년과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어린 손녀 둘과 함께 세상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도회지에서 생활하다 15년 전쯤 태자리인 이곳 고향집에 내려와 본격적인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강규원 이장은 처음엔 복분자를 재배했었는데 요즘엔 찾는 이가 많이 줄어 3년여 전부터는 포포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듣기에도 생소한 이 열매는 미국이 원산지로 대서양 연안에서 북쪽으로 뉴욕 주까지, 서쪽으로 미시간과 캔자스 주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하고 키가 12m까지 자란다. 열매는 각종 미네랄과 단백질이 정말 풍부해 칼슘, 철분, 마그네슘 등이 월등히 많고 특히 비타민 중에 니아신이 많다고 한다. 또한 껍질에는 더 풍부한 영양가가 있으며 열매와 더불어 암 예방에 효과가 있는 아세토제닌을 포함하고 있어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다고.

직접 섭취 뿐 아니라 2차 가공을 통한 상품을 만들 수 있어 이를 통해 재고를 줄이고 부가가치를 높여 보다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한다.

강 이장에 따르면 “출하시기인 앞으로 2년 후엔 판로가 무척 기대된다”고 말하고 “포포나무는 무엇보다 재배가 용이해 지역주민들의 큰 소득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역 장성에서도 인근 담양이나 화순처럼 특용작물에 대한 발 빠른 대처와 신속한 정보제공, 지원책 마련이 아쉽다고”도 했다.

아토피치료에 효과적이라는 마을위 온천샘물. 유황성분도 다량 함유돼 있다고 알려졌다.
아토피치료에 효과적이라는 마을위 온천샘물. 유황성분도 다량 함유돼 있다고 알려졌다.

한편 원덕마을 뒤에 흐르는 샘물이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예로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지상파 방송국뿐 아니라 종편방송국에서도 취재문의가 쇄도하기도 한 이곳 샘물은 실제로 일제 강점기 때부터 유황온천수라는 소문이 떠 돌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물로 목욕을 한다든가 꾸준히 마시며 아토피를 치료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 얼마 전 한 사업가가 이곳 샘물을 온천수로 개발하려다 자금문제 등에 막혀 지금은 사업이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갈애바위: 원덕에서 동쪽으로 400m 떨어진 도로변에 병풍산(노령산)에서 흘러나온 조그마한 바위 봉우리가 있는데 흡사 여인의 얼굴과 같으며 이 바위를 갈애바위 또는 미인암, 처용암이라고 부른다. 갈애는 목란마을에서 태어난 실존인물로서 미모가 천하일색으로 당대의 명기가 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이 마을에 내려오고 있다.

김학자와 장님노파의 딸인 복녀 사이에 태어난 ‘갈애’(蘆娥 노아)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느 퇴기집의 수양딸로 팔려가 기생이 되었는데 그의 미모가 어찌나 빼어나던지 전라도에 부임해 오는 부사, 감사들이 모두 노아(갈애)에게 정신을 팔려 민정을 돌보지 않으니 조정에서 노계명(盧啓命)을 암행어사로 보내어 갈애를 처벌하도록 하였다. 이 소식을 미리 알게 된 갈애는 미리 노령 계곡에서 소복을 입고 어사 노계명을 유인하여 그와 백년가약의 언약을 맺고 팔에 언약의 맹세로 노어사의 이름을 쓰게 했다. 며칠 후 어사는 장성부에 출두하여 죄를 문책받게 된 노아는

마을앞 병풍산 봉우리 갈애바위. 실존했던 명기 갈애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마을앞 병풍산 봉우리 갈애바위. 실존했던 명기 갈애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盧兒臂上刻誰名(노아비상각수명) 갈애(노아)의 이팔에 뉘이름 새겨있뇨

點入雪盧字字明(점입설노자자명) 고운살에 먹이 베어 글자도 선명쿠나

寧使川原江水盡(영사천원강수진) 차라리 천원강이 말라버릴지언정

此心終不負初盟(차심종불부초맹) 굳게 맺은 그 맹세 변할 줄이 있으랴

라는 글을 써 올리니 어사는 그제야 속았음을 알았으나 어쩌할 수 없어 문죄치 못하고 한양으로 돌아가 임금께 사실을 고하고 어명을 받아 노아를 소실로 맞았다고 한다. 갈애가 죽은 후 마을에 예쁜 여자들이 태어나지만 풍기가 문란하였는데 지나가던 중이 말하기를 갈애바위의 정기 때문이라 하여 바위의 한쪽 눈을 정으로 파버렸다고 한다. 그후 태어난 여인들은 얼굴은 곱되 눈이 먼 애꾸가 많이 태어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

위부분이 잘려나간 전일귀효자비
위부분이 잘려나간 전일귀효자비

전일귀효자비: 마을에서 목란마을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한 비로 현재 윗부분이 잘려나가고 없다, 비각도 파손되어 흔적이 없는데 이는 동학란때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곳을 지나다 전일귀 효성에 감복해 제사를 지내준 뒤 이 사실을 안 관군이 비를 부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현재 파손된 비의 전면에는 [일귀지비]란 글씨가 보이는 암기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원덕사미륵불: 구전에 의하면 백제시대 세워졌다고도 하나 확실치는 않다. 불상이라기보다는 장승과 같은 토속적인 인상을 주는 원덕리 미륵석불에는 갈애바위와 짝을 이루는 애틋한 사연이 숨어 있다. 갈애를 짝사랑하던 마을 총각은 그녀가 죽자 비통해 하면서 바위에 사랑하는 님의 얼굴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위가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갈애의 눈썹만 새기고는 바위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를 가엾게 여긴 사람들은 갈애바위가 잘 보이는 곳에 미륵석불을 세웠고, 영원히 두 사람이 같이 있도록 해주었다. 이 밖에 또 다른 사연이 있는데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 쏜 총알을 빼내어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고도 한다. 그 후로 미륵불에 대한 효험이 널리 알려져 아들을 못 낳는 여인들이 백일기도를 드리기 위해 지금도 찾아오고 있다고.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 되었고, 미륵석불의 모양이나 기법 등으로 볼 때 고려말 또는 조선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덕마을 전경
원덕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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