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말 못할 것을 내가 대신했을 뿐”
“남자들이 말 못할 것을 내가 대신했을 뿐”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8.11.14 1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악의 남편 신성일, 최고의 부인 엄앵란

향년 81세의 신성일, 그는 영화 같은 삶을 살다 한 줌의 흙이 되어 갔다.

삶의 끝이란 이처럼 허무하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뭇 여성의 시선을 사로잡던 천하의 배우라할지라도 갈 때는 여느 범부들의 마지막 장면과 똑같이 허무하게 갔다. 그가 죽은 뒤에 차지한 면적은 고작 한 평 남짓한 산 언덕의 흙일뿐이다.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나오는 가사가 떠오른다.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이자 영원한 하숙생이었던 최희준 씨도 올 8월에 하늘로 올라갔다.

‘눈물도 한숨도 나혼자 씹어 삼키며 밤거리의 뒷 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의 목숨을 걸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 그대를 태양처럼 우러러보는 사나이 이 가슴을 알아줄 날 있으리라’

7080 세대들이면 기억할 사람이 많은 노랫말이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한 연예인의 죽음이 강하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이별’이기 때문이 아니다. 망자의 부인 엄앵란이 운명적으로 감당하며 속알이 하고 살았을 눈물의 세월에 대해 생각하니 새삼 남자의 반성 곁들여 지기 때문이다.

“제 남편을 울면서 보내고 싶진 않아요. 울면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한데요”

조문객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고 애써 담담한 모습을 보인 미망인 엄앵란 씨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한 맺힌 여인의 속 마음을 엿보게 한다.

잘 나가던 배우의 결혼은 초기부터 순탄치 않는 삶을 예고했다. 신성일은 여배우들과 숱한 염문을 뿌렸고 급기야 75년에는 별거에 들어가기도 했다.

신성일은 무수한 여인들의 러브콜을 받아왔다. 그만 큼 썸씽도 많았다. 드러난 사연만도 헤아릴 수 없을진데 안 보이는 사연은 또 얼마일텐가?

그는 57편의 영화에 출연해 118명의 여자주인공과 멜로 연기를 했다. 그 중에서도 당대 최고의 여배우라는 윤정희와 99번이나 커플 연기를 했다. 그 많은 장면을 찍으려면 실제 연인 이상으로 호흡을 맞춰야 했을 것이다. 그 때마다 “우린 호흡이 척척 맞는 콤비였다”고 당당히 말하곤 했다.

심지어 자신이 77세인 2011년 펴낸 자서전에서 “서른 세살 때 아나운서출신 미국 유학생과 사랑에 빠졌다.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일등석에서 사랑을 나눴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동아방송 아나운서였던 고 김영애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좀 추하게 말하자면 잘 나가는 아나운서와 비행기 안에서 섹스를 즐겼다는 고백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엄청난 비난이 일었다. ‘한국 최고의 배우가 그 따위 행동을 했느냐’고, 또 ‘그런 사실을 굳이 밝혀야 하는 거냐’고 분노 섞인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신성일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의 아름다움에 나는 속수무책이다. 이 말은 (보통) 남자들이 말 못할 것을 내가 대신한 것이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나는 책임을 진다”라고. 그는 평생 후회같은 것 남기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마지막까지 신성일을 ‘하나밖에 없는 남편’이라고 생각한 엄앵란은 폐암으로 그가 임종이 가까워지자 “내 남편은 끝까지 멋있게 죽어야 한다. 죽을 때까지 VVIP특실에서 대우받아야 한다”고 병 수발에 최선을 다했다. 모진풍파를 겪고, 병마와 싸우며 함께 인생이란 배를 타고 온 여인의 외침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만나 인연을 맺고 결혼하게 된 계기는 영화 ‘배신’이라는 작품을 찍으면서였다. 그런 그가 영화의 실제처럼 배신을 때렸다.

하지만 영화같은 삶을 살다간 그가 엄앵란에게 마지막 남긴 말은 “수고했고 고맙다. 미안하다”였다.

남자들이 부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고 가는 게 도리일텐데...

천상에서도 ‘눈물도 한숨도 나혼자 씹어 삼키며 밤거리의 뒷 골목을 누비고 다녀도~’라고 맨발의 청춘을 부르며 당당할 것 같은 그의 뒷 모습이 어른거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