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 기씨 귀중한 고문서 세상 밖에 나오다
행주 기씨 귀중한 고문서 세상 밖에 나오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8.11.14 1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49점 한국학호남진흥원에 기탁…10일 감사패
기윤진-기양연 서울과 서신…안부묻고 선물보내
장성군 아치실을 중심으로 기거해온 행주 기씨 금강공파의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고문헌 2,749점이 한국학호남진흥원에 기탁됨으로써 그 가치가 세상 밖으로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장성군 아치실을 중심으로 기거해온 행주 기씨 금강공파의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고문헌 2,749점이 한국학호남진흥원에 기탁됨으로써 그 가치가 세상 밖으로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장성아치실  

장성에 뿌리를 둔 행주 기씨 금강문중파에서 귀중한 고문헌들을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에 기탁했다.

기탁 고문헌은 장성 아치실을 중심으로 세거한 금강 기효간(錦江 奇孝諫 1530~1593) 선생의 종손가에 전해지는 문적류 2,749점이다.

이들 고문헌의 생산 시기는 1448년 (세종 30년) 기건(奇虔)을 전주 부윤으로 임명하는 교지로부터 근세인 일제의 조선침략과 수탈이 본격화되는 19세기 말의 실상을 적은 서찰류에 이르기까지 망라돼있어 조선 시대 중앙정치 무대와 지역의 근황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 고문헌을 분류해보면 고문서 2,048점, 고서 701점, 백패교지 1점 등이다. 고문서는 편지의 일종인 간찰류가 1,161점으로 가장 많고 호적 36점, 명문류 109점, 소지류 52점, 시문 300점, 교지류 등이 포함돼있다.

교지류는 과거급제나 관리 임용문서로서 시권.백펴.홍패.교지.교첩 등이 포함돼 있고 호적류는 장성부에서 발급한 호구단자, 명문류로는 토지나 노비 등의 매매계약문서, 소지류는 소송이나 청원 문서, 간찰류는 부자간인 기윤진과 기양연이 서울과 장성을 오가며 주고받은 서찰 등이 포함돼 있다.

이번이 기탁한 고문헌은 영구 기증이 아니라 언제든지 문중에 희망하면 다시 반환받을 수 있다.

지난 11일 오후 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행주 기씨 문중을 대표하여 기준서씨(오른쪽)가 감사패를 이종범 진흥원장으로부터 수여받았다.
지난 11일 오후 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행주 기씨 문중을
대표하여 기준서씨(오른쪽)가 감사패를 이종범 진흥원장으로부터 수여받았다.
이날 학술세미나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김희태 문화재전문위원과
문현주 순천대교수, 김기림 조선대교수(사진 좌로부터).

하지만 고문서를 보관 연구하는 한국학진흥원에 기탁함으로써 문중 서재의 보관함에 잠들어 있는 것보다 세상에 들춰 내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어 학계의 칭송을 얻고 있다.

이종범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은 “이번이 기탁된 행주기씨 고문헌은 조선시대 조정과 전라도, 관리의 임용과 등용과정, 일용품과 특산품 등을 상정해 보는 생생한 사료집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희태 문화재전문위원은 “실로 대단한 연구 자료다. 민간인들의 호적과 재산상속 등의 경제활동 문헌과 기정진.기우만.송시열.김조순 등의 당대의 인사들과 교류했던 간찰류, 동학농민운동과 위정척사 운동의 바탕을 알 수 있는 정서적 흐름 등은 전라도 천년사를 살피는 귀중한 사료다”라며 “이번 기탁을 계기로 앞으로 이들 사료의 가치를 드높이고 잘 보존할 수 있도록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구학호남진흥원은 11일 오후 2시 진흥원세미나실에서 행주기씨 문중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장성 행주기씨 금강문중파 기탁 고문헌’의 실제와 가치를 살펴보는 2018호남문헌세가 학술대회를 가졌다.

이날 발표된 요지를 발췌한다.

 

“가난해지긴 쉽고 거기서 벗어나긴 어렵다”

아치실 귀향 후 농사지으며 어려운 생활 토로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은 이번 행주 기씨 문중의 고문헌 기증을 계기로 호남문헌세가의 활동상을 재조명하고 자료집으로 집대성하는 학술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은 이번 행주 기씨 문중의 고문헌 기증을 계기로
호남문헌세가의 활동상을 재조명하고 자료집으로 집대성하는 학술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백석헌집⌟으로 본 기양연의 문학세계

김기림 조선대학교 교수

김기림 교수는 백석헌 기양연(1827~1895)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살피면서 그의 사상의 기틀은 그의 숙부이자 당시 호남의 대표적 유학자였던 노사 기정진(1798~1879)의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보았다.

노사선생은 조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는데 “새벽이 일찍 일어나 육경을 공부하며 주자의 저서를 참고하여 읽어라”고 권하는가 하면 “과거 공부한다며 서울에 머물면서 서울 풍속에 물들지 말라”고 따끔한 훈계를 하곤 했다.

우여곡절 끝에 문과에 급제한 기양연은 대체로 낮은 직급에만 머물러 당시 사람들 사이에 ‘아까운 인재’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외국의 문물과 통상요구가 드세지는 시기를 맞아 여러 정책과 제안을 하려했으나 벼슬에서 밀려나자 미련을 버리고 아치실로 귀향, 농사와 독서를 겸행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척박한 땅에 농사를 지으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농사를 지으면 가을에 수확이 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번 기탁 고문헌에 포함된 1448년 기건 선생의 교지. 교지란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 및 의중을 담은 언사, 또는 국왕이 관직 등을 내리는 문서를 말한다.
이번 기탁 고문헌에 포함된 1448년 기건 선생의 교지.교지란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 및 의중을 담은 언사, 또는 국왕이 관직 등을 내리는 문서를 말한다.

하지만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 후 농사를 선택한 뒤 살아가는 현실은 ‘가난해 지긴 쉽고 거기서 벗어나긴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농사는 그에게 삶 속에서 수양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이렇게 농민들이 혁명을 일으킨 것은 모두 위에 있는 사람들이 도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탄했다.

특히 조정이 일본 군대의 힘을 빌어 동학을 진압하려하자 ‘임금의 백성을 임금이 왜구들로 하여금 토벌하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탄식했다.

기양연은 동학농민군이 진압되자 지리산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비록 낮은 관직이었지만 백성들의 과중한 세금과 관리의 착취를 비판하는 ⌜삼정책⌟, ⌜척양사론⌟, ⌜효책⌟ 등의 글을 통해 바른 정치를 강조하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여러 곳을 방문하는데 종이만한 선물이 없습니다”

서울 권세가 양반들 방문·인사하는데 지역특산품 부탁 

기윤진-기양연의 경향간 서신 교환과 목적

문현주 순천대학교 교수

1515년으로 밝혀진 기원 선생의 교첩. 교첩이란 조선시대에 5품 이하의 문무관원을 임명할 때 내리던 사령장을 말한다.
1515년으로 밝혀진 기원 선생의 교첩.
교첩이란 조선시대에 5품 이하의 문무
관원을임명할 때 내리던 사령장을 말한다.

이번에 기탁한 고문헌에는 기윤진이 아들 기양연에게 보낸 24통과 기양연이 아버지에게 보낸 103통의 간찰이 포함돼있다. 기윤진-기양연 부자 사이의 편지에는 장성과 서울에서 서로의 안부와 정세를 묻는 소식이 빠지지 않는다.

‘서울 소식은 바람으로 전해오는 것이 많아 정확하지 못해 답답하다’(1872년 1월 6일) ‘상소문 베낀 것이 별지에 있으니 살펴보신 후 여러 집안에서 돌려보시기 바랍니다’(1873년 6월 20일) 이같은 편지에서 볼 수 있듯이 기양연은 서울의 중앙정치나 세상 흐름을 전달했고 기윤진은 자식에 대해 물심 양면으로 걱정과 성원을 다하는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기양연은 젊은 시절부터 공부를 시작, 41세에 문과에 급제할 때까지 한양을 오가며 공부하고 정계와 교류했다. 그러면서 생필품이나 선물 등을 부자간에 교환하는 모든 것이 나타나 있다.

기윤진이 장성에서 서울로 보낸 물품은 인사를 하거나 선물로 사용할 옷감류와 종이류 등의 특산품이었고 기양연이 서울에서 장성으로 보낸 것은 책이나 달력, 약재, 인삼, 생선 등이었다.

이런 도중에 기양연은 지역특산품을 서울의 양반들이나 고위 관리들에게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봄에는 여러 곳에 방문하는 것을 결코 말 수 없으니 미리 예상하시기 바랍니다’(1864년 10월 21일) ‘방문하는데 너무 야박하게 할 수도 없는데 (선물에는) 종이와 춘포(베)만한 것도 없습니다’(1864년 12월 10일)

양반댁에 선물을 좀 해야겠다는 내용과 어떤 선물이 좋겠다는 취지의 이같은 서신으로 보아 전라도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리고 출세하려면 어떤 험로를 거쳐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김기림 교수는 분석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