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에 씨앗으로 뿌려졌으면...”
“누군가의 삶에 씨앗으로 뿌려졌으면...”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8.12.12 1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장성고 설립자 반상진 이비인후과원장
자료사진
자료사진

“소같이 일하고 학처럼 늙으라 했습니다. 나는 교육을 통해 주위의 사람들이 어려움의 사슬을 끊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아 주길 바랄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고창에 중학교를 설립하여 그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 놀며 공부하고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해 말없이 지원해주며 아픈 학생과 학부모, 주민들을 위해 진료봉사를 거듭하며 생의 희열과 만족을 느껴왔었다.

그 뒤 10년의 세월이 더 흐른 1984년. 아직도 우리나라 군단위에 인문 고등학교가 없는 지역이 있었다. 전남 장성군이 그랬다. 장성은 내가 태어나서 3년간 살던 고향이다. 군민 대표들이 공립 인문 고등학교 설립 운동을 추진했다. 당시 전라남도 교육감이 장성 출신이어서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는가 싶었으나 토지는 군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교육청의 요구 때문에 벽에 부딪쳤다. 그것이 당시의 우리나라 형편이었다. 그러자 추진위원회 측에서 사립 고등학교를 유치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희망자를 물색하고 적임자를 찾았다. 나에게까지 그 뜻이 전해졌다. 나는 며칠간의 생각 끝에 뜻을 전했다. 희망자가 없거나 적임자를 찾지 못할 때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추진위원회는 몇 차례의 회의를 거듭하고 나를 참석시켜 나의 의견과 계획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 돕자고 했다.

군민이 추진하고 기관이 같은 뜻이어서 나는 자금만 걱정하면 학교 설립은 끝나는 줄 알았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당연히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내가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어려움이 없어야 할 행정상의 규제들에 대한 이해되지 않는 해석들로 관이 시간을 끌었다.

재일교포 향우도 포기한 학교설립

어렸을 때 많은 고생을 하고 재산을 많이 모은 재일교포 한 분이 많은 돈을 갖고 고향에 와서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다니다가 지쳐서 그만 포기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이해되었다.

학교의 위치는 추진위원회의 의사에 따랐다. 논밭이어서 땅의 주인이 많았다. 20여 명의 지주들과 우리 측 대표가 만났다. 땅 주인들이 상의하여 서로의 가격을 정하여 알려주시라 했다. 토지의 위치에 따라 차등을 둔 땅값을 제시 받았다. 시세보다는 높은 가격이었지만 고마웠고 그대로 수용했다.

전체 군민의 후원과 믿음은 대단했다. 아직 학교 건물도 완성을 보지 못했는데 정원의 배에 가까운 지망생이 모였다. 나는 무거운 책임을 느꼈다. 그리고 힘이 솟았다. 입학식에 맞추어 기숙사도 완공되었다. 전교생이 뜻에 따라 학교 버스나 기숙사를 이용하도록 했다.

나의 뜻은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을 최대로 늘리고 공부 할 수 있는 시간을 극대화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지금 학교에 계시는 모든 직원들은 장성에서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근무하게 되었다. 많은 학생들에게 각종 장학금을 지급했고 모자라는 돈은 내가 벌어서 메꾸었다.

이곳에도 일요 진료실을 마련했다. 장성에서는 오전에 진료하고 고창에서는 오후에 진료했다. 처음에는 학생들만 돌볼 생각이었으나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비탈길에 소나무 한 그루라도 더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산다. 나의 이웃과 사회가 나의 마음의 밭에 씨를 뿌려준 것처럼 나도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삶속에 어떤 씨앗으로 뿌려졌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비탈길에 소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어주고 싶다.

지금도 일요일에는 아침 9시까지 진료하고 우리 부부는 고창, 정읍, 나주의 5남매 부부와 함께 내가 어릴 적에 자랐던 장성과 고창의 산길과 들길을 세 시간쯤 걷고 마을 사람들도 알아보고 함께 점심을 먹고 늦게 광주에 돌아온다.

돼지같이 먹고 소같이 일하고 학처럼 늙으라고 한다. 열심히 일하고 깨끗이 늙으라는 뜻이다. 청년기는 알차게 살고, 장년기는 많은 일을 하면서 뜨겁게 살고, 완숙한 인격을 갖춘 노년기를 보내라는 뜻일 것이다. 그리하여 양심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노숙의 날을 보내라는 뜻 일 것이다. 그리하여 백발의 영광과 즐거움을 가져보고 싶다.

지금 아내와 나는 90살을 앞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늘 함께 살면서 각자의 일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쁨과 흥분과 성취를 순간순간 오롯하게 함께 맞으면서 살고 싶다.

작은 선의 의지 모여 큰 바다 이루길

1871년 독불 전쟁 때 프랑스를 굴복시키고 60년 만에 패전의 굴욕을 씻고 돌아온 몰트게 장군이 온 국민의 환영을 받으면서 “독일 국민의 승리는 나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독일의 국민 교육의 승리이며 학교 선생님들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한 뜻을 이곳에서 찾고 싶다. 독일의 애국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국민에게 고한 교육입국의 꿈이 이곳에서 뿌리 내리기를 바란다.

페스탈로찌는 자신의 가슴 속에는 청년 시절부터 한 줄기의 강물로, 조용히 그리고 유유히 하나의 목표를 향해 흘러왔다고 했다. 그것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을 찾아내어 이를 끊어버리는 일이었고, 그 가능성을 찾아 일생을 바쳤다.

우리 모두 가슴 속에 흐르고 있는 선의 의지의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서 큰 바다가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