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은 창작의 어머니” 짝퉁을 허용 하노라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 짝퉁을 허용 하노라
  • 칭다오=백형모 기자
  • 승인 2019.01.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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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칭따오 기행/

칭따오 맥주에 양꼬치 구이맛 ‘명불허전’

독일지배 영향…‘빨간 건축물을 고수하라’

빨간색을 고수하라19세기 초 독일의 지배를 받은 칭다오시는 당시 유럽풍 건축물을 그대로 간직하고 빨간색의 지붕을 고수하는 도시 컬러마케팅 정책을 펴고 있다. 경관지구에서는 건축허가가 엄격하다.
빨간색을 고수하라19세기 초 독일의 지배를 받은 칭다오시는 당시 유럽풍 건축물을 그대로 간직하고 빨간색의 지붕을 고수하는 도시 컬러마케팅 정책을 펴고 있다. 경관지구에서는 건축허가가 엄격하다.

찌무르 시장엔 없는 것이 없다

모방은 죄가 아니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다. 모방을 통해 진품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라. 모방제품은 진품과 어떤 미세한 부분이든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모방 제품인 것을 알리고 판매하라.

이것이 바로 중국이 짝퉁 시장의 천국이 된 이유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중국 정부는 수많은 인민들이 유명하다는 루이비통이나 피에르가르뎅 같은 비산 제품을 정가에 구입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 인민들이 비록 유사제품이지만 모방 제품을 걸치고 이용하면서 삶의 의욕을 찾고 소비욕구를 충족하도록 만들었다.

현재 중국의 인구는 14억 7천만 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18억 명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짝퉁의 성행은 천문학적인 인민에 대한 배려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모든 제품에 정가가 없다. 심지어 담배값도 천차만별이다. 술도 오백 원부터 오백만 원짜리까지 다양하다. 칭다오의 대표적인 짝퉁 시장인 찌모르 시장에 세계적인 상표의 모든 것이 있다고 소문이 난 이유다.

한국을 비웃는 초거대 도시 칭다오중국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칭다오 시의 고층 건물. 바다를 접하고 있고 풍부한 물산과 온화한 기후로 인구가 1,200만 명을 넘는 최대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을 비웃는 초거대 도시 칭다오중국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칭다오 시의 고층 건물. 바다를 접하고 있고 풍부한 물산과 온화한 기후로 인구가 1,200만 명을 넘는 최대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인구 1,200만 명 ‘무시하지 마라’

비록 바다 건너이지만 인천 앞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땅으로 산동성의 산둥반도가 있다. 맑은 날이면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곳이다.

그 산둥반도의 끝 도시가 연대(옌타이)이고 그 아래 남쪽에 위치한 곳이 청도(靑島), 중국식 발음으로 ‘칭다오’라는 곳이다.

한국으로 봐선 북경과 상해라는 도시가 워낙 크고 잘 알려져 있어 청도는 칭다오 맥주의 본고장 정도로 가볍게 인식될 뿐, 대단하다는 의미를 못 가진 곳이다. 또 특별한 경관이나 유적지가 없어 한국에서 관광지로 부각되지 못한 곳이었다. 굳이 관광상품을 소개한다면 칭다오 맥주 축제와 공장 견학, 그리고 짝퉁 시장인 찌모르 시장이 알려져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 실상을 안다면 놀라운 곳의 하나다. 중국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바다와 풍부한 해산물이 있어 중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국에서 가장 많은 부자들이 살고 있는 도시다.

중국에서 잘 사는 사람들은 흔히 집을 3채를 보유해야 한다고 하는데, 쾌적한 삶을 위해 산동에 한 채(약 30억 원), 그다음에 겨울철 휴양을 위해 남쪽의 하이난도에 한 채(약 3억 원), 그 다음에는 여름철 휴양을 위해 북쪽 흑룡강성 하얼빈에 한 채(약 3천만 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만큼 산동성 칭다오는 살기 좋은 최고의 도시로 정평 나있다.

칭다오는 근대사에서 외세의 침략 전쟁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평화의 도시다.

인구는 자그마치 1,200만 명이다. 서울보다 훨씬 많다. 산동성에서 성도인 제남에 이어 두 번째 큰 도시다.

칭다오는 먼 역사보다 근대사에서 가장 아픈 시련과 굴곡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칭다오는 청나라 때인 1891년부터 무역항으로 개발되어 왔는데 1897년 독일이 대포와 연발총으로 무장하고 점령, 승리함으로써 중국 정부로부터 조차지로 승인받았다. 그래서 빨간 기와를 사용한 유럽풍 건물들이 많고 맥주를 좋아한 독일인들의 유산으로 맥주제조공장이 발달해 오늘날의 칭다오 맥주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배경이다.

칭다오에서 일본인 만나기가 어렵다. 칭다오 맥주공장에는 일본 관광객을 받지 않는다. 일본인을 철저히 배격하기 때문이다. 그러기까진 아픈 사연이 있었다.

청다오 맥주를 아십니까?칭다오 시에서는 지역특산물을 알리기 위해 매년 8월 국제적인 맥주 축제를 열고 양꼬치 구이로 세계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사진은 맥주 박물관 앞의 조형물.
청다오 맥주를 아십니까?칭다오 시에서는 지역특산물을 알리기 위해 매년 8월 국제적인 맥주 축제를 열고 양꼬치 구이로 세계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사진은 맥주 박물관 앞의 조형물.

일본인들은 맥주공장 관광 오지 마라

독일은 칭다오를 비록 강제로 점령했지만 700여 명의 독일인들이 파견 나와 지배자로 있으면서 산업이 발달하고 노동자 계층이 안정되는 시대를 맞았다. 일을 열심히 하면 급여를 올려주고 승진시키며 추가 시간에는 그만큼 더 받았다. 학교를 지어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도로와 공원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행복을 선물했다. 독일 지배하의 17년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동아시아 침략을 꿈꾸고 있던 일본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14년 연합군에 가담하여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독일 패망하자 조차지인 청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당시 독일인들이 청도에서 물러나 본국으로 가면서 무기를 들고 가는 대신, 산업시설과 맥주시설을 남겨두고 갔다. 지배자는 바뀌지만 백성은 잘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밖에 몰랐다. 그 맥주공장을 인수한 일본인들은 후지맥주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비싸게 팔았다. 그리곤 임금과 인권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독일과 달리 중국인의 재산을 빼앗고 부녀자들을 강간했다. 일본인들은 1922년 본국으로 물러나면서 문화재를 파괴하거나 반출하는 등 악행을 자행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칭다오 사람들은 일본에 극한 혐오감을 갖고 있고, 현재까지도 칭다오 맥주박물관에는 아예 일본인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일본인들이 떠나간 뒤에 그들은 더 갸륵한 정성을 쏟아 시설을 보완하고 독일식 맥주 맛을 부활시켜 상품화해 나갔다. 그리고 그 역사를 보전하기 위해 맥주박물관을 만들고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세계 24개국에 수출되고 있을 정도다. 매년 8월에 열리는 칭다오 맥주 축제는 이 지역 최고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바다와 근접한 산동성의 자연 목초지에서 직접 기른 양고기로 만든 양꼬치 구이를 별미로 한 맥주 관광 코스는 칭다오를 찾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주고 있다.

“해변 마라톤은 칭다오가 최적지”칭다오 시는 37km에 달하는 해변 길을 모두 데크 길로 말끔히 정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바다가 없는 중국 각 지역의 마라토너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해변 마라톤은 칭다오가 최적지”칭다오 시는 37km에 달하는 해변 길을 모두 데크 길로 말끔히 정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바다가 없는 중국 각 지역의 마라토너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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