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세상의 어부지리를 경계하라!
어수선한 세상의 어부지리를 경계하라!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9.03.13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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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중국에 피비린 내 나는 약육강식의 전국시대가 전개되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강산의 주인이 바뀌는 난세의 극치였다.

강자는 더 큰 강자로 부상하며 천하의 주인 자리를 독차지하려 했고 약자는 먹히지 않기 위해 힘을 기르고 이웃과 합종연횡(合從連衡)을 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각 나라와 관계를 조율하는 외교교섭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이러한 문제를 도맡는 사람들을 세객(說客)이라 불렀다.

세객들은 천하를 돌며 자신의 학문과 뛰어난 언변, 난국 타개의 지혜를 왕에게 어필할 기회를 잡아야 등용될 수 있었다. 그리고 설령 발탁됐다 하더라도 자신이 맡은 외교 업무를 성공시켜야 진짜로 공로를 인정받고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교섭에 실패하면 한 순간에 야인으로 전락해야 했다.

세객들은 논리적인 말 한마디로 상대국의 허를 찌르게 만들거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했다. 전국시대에는 수천 명이나 세객들이 세치의 혀로 혼돈의 시대를 누비고 다녔다.

세객들이 필요로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난세(亂世)였다. 평온한 시기의 왕들은 그들을 환대하며 발탁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난세에 영웅 난다’는 말도 생겼다.

전국시대에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려고 전쟁준비를 서둘고 있었다. 이때 소대(蘇代)라는 세객이 연나라 왕의 부름을 받고 조나라 왕을 설득하러 갔다. 조나라 왕 앞에 나선 소대는 가벼운 일화를 꺼냈다.

“여기에 오는 길에 역수라는 강을 건너왔습니다. 건너면서 가만히 보니 모래밭에 큼지막한 조개가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새가 날아와 입 벌린 조갯살을 쪼아 먹으려하자 조개가 황새의 주둥이를 꽉 물어 둘이 엉켜 있었습니다. 황새는 ‘조개 너는 이대로 햇볕에 하루만 있어도 죽을 것이야’하고 호통 쳤습니다. 그러자 조개도 ‘황새 너는 이대로 하루만 있어도 숨도 못 쉬고 지쳐 죽을 것이야’하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이곳을 지나가던 어부가 엉켜있는 조개와 황새를 둘 다 주워갔습니다.

조나라가 지금 연나라를 공격하려고 합니다만, 서로 지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전쟁이 길어져 국력이 쇠퇴해지면 이웃하고 있는 진나라가 두 나라를 통째로 집어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신중이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나라 왕은 소대의 말을 듣고 “과연 옳은 판단이로구나”하며 연나라와의 전쟁 계획을 중지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어부지리(漁父之利)가 탄생하는 고사다. 서로 다투는 틈을 이용해 제삼자가 이익을 챙기게 된다는 말이다.

2천 년을 뛰어 넘은 한반도 주변의 아시아 대륙에도 치열한 외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사이에 밀고 당기던 핵 협상이 아무 성과 없이 교착상태에 있다. 외견상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당사국 간에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국경 없는 총성이라 할 만하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주변국들은 수없는 계산으로 경우의 수를 놓고 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눈을 부릅뜨고 밀착지역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들과의 외교를 소홀히 할 수 없는 북한과 한국 정부도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분석표를 그리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 자칫하면 외교에서 소외되거나 어부지리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응대사령(應對辭令)이다.

응대란 어떤 상황이나 부름에 처하는 경우를 말하며, 사령이란 그런 상황에서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응대사령은 상대의 설득이나 교섭 또는 상사를 대하거나 부하를 다스릴 때 필요한 수완이다.

살다 보면 나라가 위기 상황에 직면할 때도 있고, 직장이나 가정이 위기에 놓일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슬기롭게 해쳐나가는 방법이란 내면에 쌓인 내공과 냉철한 주변 파악이다. 결코 임기응변으로 대신 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내공을 길러야 한다.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인 한비자는 “어떤 나라, 어떤 단체든 자멸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자국의 힘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다른 나라의 힘에만 의존하면 멸망한다고 지적한다.

이 문제는 작은 나라나 작은 기업일수록 심각하다. 작은 나라가 살아남으려면 다른 나라와 협력이 중요하다. 외교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공이 없는 나라가 외교에만 의지하면 결국 멸시당하고 힘에 밀리게 된다.

글로벌 경제시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다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는 이즈음 대한민국이 살 길은 강철 같은 내공이 뒷받침 된, 작지만 강한 조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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