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纓之會…모두 갓끈을 자르시오
絶纓之會…모두 갓끈을 자르시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9.03.25 12: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승리 뒤에는 목숨을 담보했던 만큼 호화로운 잔치가 벌어진다. 이른바 승자의 기쁨 나누기다.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칼바람이 부는 춘추시대, 중국 초나라 장왕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장수들을 위로하는 연회를 거나하게 베푼다. 자신의 후궁들로 하여금 장수들에게 시중을 들게 하는 파격적인 자리를 만든다. 후궁은 왕의 전유물로 어느 누구도 손대서는 안 될 금단의 열매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한참 연회가 깊어질 무렵 회오리바람이 불어 연회장의 촛불이 모두 꺼지게 됐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서 한 후궁의 다급한 비명소리가 목소리가 들렸다. 한 장수가 후궁을 희롱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예로부터 왕의 여인에게 손을 댄 자는 왕권에 도전한 불경죄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법이었다.

그 후궁은 크게 외쳤다. “폐하! 무례한 신하가 어둠을 틈타 제 가슴을 만졌는데 그 사람의 갓끈을 뜯어 놨으니 빨리 촛불을 켜고 이 작자를 찾아 엄벌해 주십시오”하는 것이었다.

이 외침을 들은 왕은 장수의 불충이 괘씸해 엄벌하여 일벌백계(一罰百戒)의 교훈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아수라장이 된 어둠 속에서 벌벌 떠는 장수들에게 명했다.

“모든 장수들은 내 명을 들어라! 이 자리는 내가 경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면 연회를 주도한 내 탓이다. 이런 일로 공들을 처벌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모두들 갓끈을 떼어버리도록 하라”

그런 뒤에 불을 켜도록 했다. 피바람을 일으키며 한 장수가 목숨을 잃을 뻔한 연회를 장왕은 너그러움으로 극복했다. 왕의 그릇의 크기를 짐작케 하는 사건이었다.

‘갓끈을 자른 연회’라는 뜻의 ‘절영지회(絶纓之會, 끊을 절, 纓:갓끈 영)’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이런 태평 시절을 겪고 난 뒤 초나라는 국력을 키워 중원의 패권을 다투기 위해 진 나라와 전쟁을 치르는데 초반 전투에서 대패해 장왕이 사로잡힐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어둠을 뚫고 피투성이가 되어 용감하게 나서서 왕을 구하고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맹장이 있었다.

감격한 장왕이 장수를 불러내 “짐이 목숨을 구하고 나라를 있게 한 경에게 후한 상금을 내리겠노라”고 말하자 그 장수는 공손하게 왕에게 큰 절을 올리며 말했다.

“폐하, 저는 수년 전에 술에 취해 갓끈을 잃어 죽을죄를 지었는데 소신을 살려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제 목숨은 폐하의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전투는 제 목숨에 대한 보답일 뿐입니다”

부하들의 실수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감싸 안을 줄 아는 덕을 베푸는 현군이었던 초나라 장왕은 진나라와 전쟁에서 대승을 거둬 중원의 패권을 장악한다. 춘추시대 세 번째 패자의 지위에 올랐으며 춘추오패 가운데 유일하게 왕의 칭호로 불렸다. 장왕은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여 굴복시키기는 했어도 그 나라를 멸망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도 처음 즉위한 뒤 3년 동안 주색에 빠져 아무 명령도 내리지 않은 채 정사를 돌보지 않고 아부하는 간신들과 놀아나기에 바빴다. 오죽하면 신하들에게 '감히 내게 간언하는 자가 있다면 오직 죽음을 내릴 뿐이다'라고 공표했을까. 하지만 오거(伍擧)와 소종(蘇從) 같은 신하들이 목숨을 걸고 왕의 과오를 지적하자 정신을 차리고 내정을 다진다.

주색잡기의 군주에서 탈피해 현군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과업은 권력을 농단한 자들을 색출하여 엄벌에 처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유능한 인재를 등용한 일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장왕은 역사에 빛나는 군주가 된다.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있다가 때를 기다린다는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배경이다.

장왕은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니 한번 날면 하늘을 뚫고 솟아오를 것이요,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니 한번 울면 천하를 뒤흔들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태산 같은 내공을 쌓고 천하를 품어 안을 줄 아는 큰 그릇으로 무장한 성군(聖君)의 도를 말해주고 있다.

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 탓이오’를 말할 줄 모르는 위정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교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