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면 모현리 4.3만세운동 100년, ‘폐허화’
북이면 모현리 4.3만세운동 100년, ‘폐허화’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9.04.01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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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 만세 함성’ 역사 뒤안길로 사라져
유족, 사우관리 부실...장성인 기상 일으켜야
1919년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북이면 모현리에 건립된 삼일사우가 관리부실로 건물 벽에 균열이 생기고 단청이 벗겨지는 등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1919년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북이면 모현리에 건립된 삼일사우가 관리부실로 건물 벽에 균열이 생기고 단청이 벗겨지는 등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장성인의 기상을 대내외에 알린 모현리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만 100년이 됐지만 그 역사의 교훈이 초라하게 퇴색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관련 기사 8면>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에서 일어난 4.3만세운동은 1919년 4월 3일 모현리 일대 주민 수 백 여명이 삼월삼짇날 화전놀이를 가장하여 집결, 대한독립을 외치며 행진하고 사거리 장터까지 진출, 왜경이 주둔하고 있던 주재소를 불태운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주동자 10명이 체포되어 악랄한 고문을 당하고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장성 전역에 만세 운동이 더욱 가열되어 울려 퍼지게 만든 도화선이 됐고, 정의의 고장 장성의 기상을 다시 한 번 전국에 알린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당시 체포된 주동자들을 비롯해 만세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이 모두 농민이었다는 점에서 동학농민운동에 버금가는 위대한 장성 민초의 역사로 돋보이고 있다.

하지만 당시 주민들이 집결했던 주막과 거리, 독립선언문을 등사했던 사설학교인 오북의숙, 마을 풍경은 잔재조차 찾을 수 없게 됐다.

뿐만 아니라 모현리 애국선열을 모신 삼일사우가 지난 1989년에 건립됐으나 30년이 지나면서 관리가 부실해 단청이 벗겨지고 건물이 뒤틀려 벽이 균열이 가는 등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정확한 만세운동의 진행기록이 없고 일제의 재판기록에 의지해 추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전남도나 장성군이 재조명 작업과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또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이 단체로 찾아와 애국심 함양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됐으나 현재는 1년에 한 번 제삿날을 제외하곤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폐허로 변하고 있다.

당시 만세운동에 주동자로 나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신상우 애국지사의 손자인 신호섭 (79)씨는 “당시 주동자와 독립운동자금 후원자 등 13분의 제사를 모시고 있는데 후손으로 세 집안만이 참석하고 있다. 다른 독립운동의 후손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신 씨는 “현재의 삼일사우 앞에 후손으로 건립부지를 희사한 신태호 씨가 유물박물관을 건립하려고 주춧돌을 매입해 배치해 놨으나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애국지사 관리와 활용방안 등에 아쉬움을 표시했다./백형모 기자

아래 사진 설명 : 모현리 만세운동을 확인해주는 일제의 고등법원 재판기록문서. 지금이라도 고증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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