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모멱자’를 기억하자
‘취모멱자’를 기억하자
  • 장성투데이
  • 승인 2019.04.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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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 죽 먹기’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남의 허점 들춰내는 일이다. 보고 듣는 대로, 생각한 대로 들춰내 말하는 것처럼 쉬운 일도 없다.

대개 사람들에게 상대방의 작은 허점이라도 유난히 크게 드러나 보인다. 이런 작은 것들도 의도하는 바에 따라 비도덕적 언행으로 치부되며 상대방의 치명적인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남의 눈 속의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의 들보는 못 본다’는 비유도 아랑곳 않는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불을 켜고 묻어있는 흠을 찾기까지 한다.

이를 빗댄 고사성어가 ‘머리카락까지 불면서(취모:吹毛) 숨어 있는 흉터를 찾아 낸다(멱자:覓疵 )’란 말의 취모멱자가 있다.

춘추전국 시대에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자는 ‘군주와 신하간의 관계를 순리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주는 작은 지식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으며 사리를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 법으로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상벌에 의해 시비를 분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터럭을 불어 남의 작은 흠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때를 씻어 알기 힘든 상대 상처를 찾지 않아야 한다’고 주창한다.

높은 자리에서 백성을 다스리려면 사소한 것까지 들춰내다간 신망을 잃게 된다는 지적이다.

군신들 간에도 자신의 구린내는 숨기고 남의 허물에는 그물망을 치듯 촘촘히 발가벗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때로는 계파를 형성하여 여론몰이를 함으로써 국론을 분열시키는 당파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두고 여야 간에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검은 속내는 감춰두고 후보자 망신주기에 급급하다. 자신들의 재산형성 과정에 그렇게 당당한 자격자가 있을까?

누구를 비난하거나 옹호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지금 한국은 자본주의 시대다.

어떤 국민이라도 정당하게 사유 재산 증식에 나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다만 직위를 이용한 정보나 편법으로 부를 형성하는 일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판사라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재산 형성에 노력했다면 굳이 나무랄 수는 없을 듯하다. 판사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한 개인일 수밖에 없다. 우아한 선비로 남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판사는 지위를 지키면서 급여로만 살아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재산 증식에 당당한 사람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당당하지 못하게 증식한 사람, 그러면서도 제 눈의 티를 감추기 위해 무리지어 공격에 나서는 사람이 더 비난받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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