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살며시 다가온 단어 ‘졸혼(卒婚)’
우리 곁에 살며시 다가온 단어 ‘졸혼(卒婚)’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9.04.29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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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졸혼이라는 단어가 우리 곁에 다가온다.

인생 졸업도 아니고 인생 졸혼이라니...

작가 이외수(73)의 졸혼 뉴스, 탤런트 백일섭(74)이 3년 전에 졸혼하고 자유로운 삶을 찾아 살고 있다는 소식이 겹쳐지면서 더욱 그렇다.

졸혼(卒婚)이란 ‘결혼(婚)을 졸업(卒)한다’는 뜻으로 부부가 이혼하지 않는 채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각자 자유롭게 사는 생활방식을 말한다. 법적으로는 부부지만 사실상 남남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삶의 형태다.

그런데 왜 이 단어가 중·장년 부부들을 솔깃하게 만드는 것일까?

혹시 내 인생에도 이런 상상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까?

사랑은 영원하지 않은 것?

결혼식장에서 흔히 신혼 남녀에게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를 사랑하라’는 주례사를 듣곤 했다. 주례의 주문대로 부부가 행복한 백년해로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런 소망이 지켜지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 하루에 다섯 쌍이 결혼하고 세 쌍이 이혼한다는 통계가 그것을 말해준다. 이혼하지 않고 산다 하더라도 별거, 졸혼 등을 포함한다면 ‘파뿌리 부부’는 신의 영역에 해당할 정도다.

우리 사회에 이혼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건 잘못된 선택이 많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신이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기에 서로 다른 두 남녀가 만나 수십 년을 부대끼며 살면 정도 붙겠지만 싫증이 나기도 할 것이다. 만약 잘못된 결혼이었다면 그 인생은 긴 고통의 터널이었을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더구나 평균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다. 그들에게 결혼의 굴레를 쓰고 죽을 때까지 괴로움을 참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너무 큰 구속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외치고 있다. ‘이제라도 잃어버린 내 삶을 찾아야겠다’라고...

내 영혼의 자유를 찾아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에 구속이나 제한을 전제로 한다. 그 ‘관계’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중에 많은 것을 포기하기를 강요한다.

이성이 만나는 결혼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특히나 강요되는 규정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 삶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들은 ‘날마다 긴장하고 싸우기보다 이혼서류에 도장 찍고 내 삶을 찾겠다’고 선언하며 새 삶을 꿈꾼다. 이른바 이혼하는 ‘돌싱’들이다.

결혼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아픔을 참고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한쪽에 대한 희생과 인내만 있었을 뿐 ‘내 삶’은 없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외치고 있다.

“지금까지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잘 참아왔다. 이제라도 속박에서 벗어나 내 삶을 찾자”라고...

인생 후반에 시작한 늦은 출발이지만 졸혼을 택한 분들이 자유와 낭만의 삶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다만, 과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뒤의 일보다 앞의 일’을 생각할 줄 알아야 진정한 졸혼의 의미가 있다.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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