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 5월 애상!
편집국에서 - 5월 애상!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9.05.27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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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년 전 황룡 승리 이후 모진 한만 쌓여

먹먹한 5월이 저물고 있다. 신록이 우거지는 5월은 봄꽃의 향연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이자 아쉬운 봄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달이며 초여름 눈부신 햇살이 대지를 달구기 시작하는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5월은 지구상 그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계절이 바로 5월이다.

125년 전, 동학농민혁명군이 유럽에서 들여온 신식총과 대포로 무장한 관군과 청군을 상대로 맨몸으로 저항하다 승리를 거둔 장성황룡전투가 5월의 끝자락 남도 땅 장성 황룡에서 있었으나 승리의 영광도 그 뿐, 결국 동학농민혁명은 아픈 미완의 혁명으로 그치고 만다.

이후 독립운동과 한국전쟁을 지나 67년이 흘러 민중들의 가슴에 남아있던 5월 동학농민의 불씨는 광장으로, 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민주화의 봄을 부르짖던 시민들 앞에 5월 16일 보란 듯이 탱크를 이끌고 나타났던 건 시위 지도부도, 야당 대표도, 그렇다고 무력했던 장면정권도 아닌 새까만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호위무사를 대동한 채 총을 들고 나타난 박정희 소장이었다.

그로부터 19년 후, 전두환 신군부는 마치 판박이처럼 박정희 소장이 했던 그대로 민주화로 들끓던 80년 5월 정국을 장악한다. 하지만 이때는 김주열 열사의 죽음과 4.19로 이어졌던 항쟁과 희생과는 비교도 못할 수많은 시민의 죽음과 처참함이 이어진다. 광주는 그들 신군부의 제물이었다.

이때의 희생자는 1950년 6·25전쟁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아픈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항쟁 기간인 1980년 5월 22~26일 까지 닷새 동안 계엄군이 물러난 광주는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던 해방구로 기억된다.

이 기간 시민들은 자치대를 조직해 스스로 치안에 나섰고 광주공동체 안에서 이 기간 단 한 건의 절도나 강도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20세기 민주주의의 빗장을 열었다는 빠리꼬뮨조차 이토록 성숙한 시민들은 낳지 못했다.

하지만 39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날의 진실은 왜곡되고, 호도되고, 매도되고 있다. 그날 민주주의 외쳤던 제나라 청년들에게 방아쇠를 당기며 ‘폭도’라는 오명을 씌웠던 것처럼 지금도 한마디 틀리지 않고 그들을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이라 지칭하며 이미 한을 품고 죽어간 이들의 영혼에 침을 뱉고 있다.

그런 그들이 항쟁의 광장에 모여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며 5월 행사장에 모인 시민들을 자극하고 그 아픈 가슴에 또 한번 대못을 박았다. 또 이들과 뜻을 같이 하는 의원들에 대한 제재도 가하지 않은 채 극구 반대하는 광주시민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당시 집권당 대표는 신성한 망월묘역을 찾았다.

39년 전 그날. 떠올리기만 해도 울분에 치떨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그날의 하늘은 39년 후 또 다시 그들에 의해 짓밟히고 파괴되고 있다. 침묵은 커녕 오히려 당당한 저들의 모습은 39년 전 그 때의 서슬 퍼런 모습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무섭다. 치가 떨린다. 아니 그보다 저들의 당당함에 두렵고 공포스럽기까지 한다.

부디 잘가라~ ‘바보 노무현’

23일은 또 어떤 날인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람, 그 선한 눈매만 봐도 한껏 정감어리고 가진 것 모두 내주고도 다 비워주지 못해 미안하다던 그 사람. 그를 좋아하던 그의 팬들이 지어준 이름 ‘바보 노무현’이 세상을 등진 날이다.

지난달 개봉한 ‘노무현과 바보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소리 소문 없이 흥행몰이 중이라고 한다.

막강한 제작사와 상업영화사가 제작한 영화가 아닌 독립영화기에 상영관을 찾기란 쉽지 않다.

상영관을 찾지 못해 관람객 수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바보 노무현에 대한 추모 열기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때마침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21일 이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을 관람하고서 ‘울뻔했다’고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연합뉴스는 보도에서 이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상영회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영화를 본 후 "나는 같이 겪었던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참 치열하게 사신 분이었는데 영화로 잘 표현한 것 같다"고 말하며 훌쩍이기도 했다고 전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 대표는 영화 상영 전 무대에 올라 "노 전 대통령이 말했듯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을 탄생시켰다"며 “우리가 역사를 항상 주동적으로 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으며 누구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봤던 바보 노무현과 바보인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그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가슴이 먹먹해 질 것이리라.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잘가라”

/최현웅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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