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 집배원이 건강해야 택배가 제대로 들어온다!!
편집국에서 - 집배원이 건강해야 택배가 제대로 들어온다!!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9.06.0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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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의 대표 직종 ' 집배노동자' 를 보며 -

지난달 13일 충남공주우체국에서 우편배달업무를 수행하던 30대 집배원이 과로로 숨졌다. 전국의 집배노동자들이 분연히 일어났다.

이제 더는 참고만 있지 않겠노라고, 다시는 동료의 죽음을 방치하지 않겠노라고, 지역우체국마다 현수막을 내걸고 동료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머리띠를 묶고 거리로 나섰다.

장성우체국도 동참했다. 23일부터 아침 1시간, 저녁 1시간씩 집배노동자들이 피켓과 알림판을 등과 배에 이고 지나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집배노동자들의 고달픈 현실을 폭로하고 지난해 우정본부가 약속했던 인력충원 약속을 이행하라며 촉구하고 나섰다.

이 땅의 집배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장이 도마에 오른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벌써 수년전부터 문제가 돼왔으나 제도가 정비도 되기 전 매번 정치권 이해관계에 부딪혀 좌절되기 일쑤였다. 소방관에 대한 처우개선문제와 함께 문제는 인식하면서도 종국에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항상 그래왔다. 이 나라 정치권은.

전국우정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과로사와 안전사고 등으로 순직한 집배노동자만 7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가히 죽음의 직업이라 칭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어릴 적 상상했던 ‘고마운 집배원 아저씨’는 소방관아저씨와 함께 항상 고마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산골짜기 오지며, 외딴섬 어느 곳이든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소식을 전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까막눈 어머니께 도회지에 간 아들이 보고픈 맘 간절히 누르며 편지에 담아 보내면 봉투 뜯어 한줄, 한줄 아들의 맘 읽어주며 어머니 말 받아 적어 아들에게 편지까지 보내주시던 고마운 그이는 집배원 아저씨였다. 군대 간 아들의 편지를 읽어주시던 고마운 그분도 집배원아저씨였다.

전도연 주연의 [인어공주]라는 영화에서 박해일은 전도연의 첫사랑 대상인 집배원으로 등장한다. 섬마을에서 섬 밖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메신저 우편배달부.

마찬가지로 섬마을 우편배달부가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조국 칠레에서 추방당해 이탈리아 정부의 도움으로 나폴리 근처 작은 섬에서 살게 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때문에 섬 우체국에서는 쇄도하는 우편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어부의 아들인 마리오를 우편배달부로 고용한다. 마리오는 네루다에게서 시에 대해 배우고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애쓴다. 시인의 편지를 전달하다 시인이 된 마리오의 실제 얘기처럼 우리들 기억 속 우편배달부는 낭만과 사랑을 가득 실은 사랑의 전령사로 기억되고 있다.

우편배달부에 관한 또 한편의 영화는 케빈 코스트너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포스트맨]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인류 종말의 순간에 찾아오는 희망을 품은 사람이 바로 우편배달부라는 설정을 했다. 이처럼 문학과 영화 속 우편배달부는 우리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고마운 존재다.

-큰 가방 속엔 편지대신 노동의 고단함만-

하지만 그 언제가 부터 우편배달부의 큰 가방 속에는 그리움과 희망이 가득 담긴 손 편지 대신 천편일률적인 활자가 찍힌 규격화된 봉투에 담긴 각종고지서와 홍보물 전단지가 가득하다. 또 언제부턴가 택배아저씨만의 전유물인줄만 알았던 택배물품마저 우편배달부 아저씨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느꼈던 왠지 모를 씁쓸함은 비단 필자만의 몫은 아니리라.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 4월, 택배노동자였던 박종태 열사는 택배비 30원 인상을 요구하다 목숨을 끊었다. 3천 원도 3백 원도 아닌 30원...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노동의 가치 30원 속에는 그 날 30원 인상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사람도 있었음을 기억하자!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해 8월부터 전 세계 청소년들과 함께 ‘등교거부운동’을 펼치고 있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공해물질 오남용으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되고 있어 이로 인해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

박종태 열사와 툰베리의 바람은 결코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다. 조금 덜 쓰되 함께 나눠 쓰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일 것이다.

어릴 적 우리들 기억 속에 희망의 메신저로 기억되던 집배원 아저씨는 그러나 오늘도 그 ‘큰 가방’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고 있다. 소비자가 휴대폰 화면을 통해 가성비를 비교할 때 업체는 ‘유통마진 절감’이라는 탈을 쓰고 속으로는 ‘단가후려치기’를 통해 하청업체의 목을 조르고 이는 고스란히 노동자의 목줄을 죄는데 사용되고 있다.

노동이 건강해야 노동자의 삶이 나아진다. 노동자의 삶이 나아져야 기업과 나라가 발전한다.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별반 없는 사람이라도 건강하고 안정적인 사회가 되려면 생산품에 대한 소비가 잘 이뤄져야 경제가 원활하게 잘 돌아 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아무리 잘 만든 명품일지라도 이를 소비할 소비자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생산품 역시 소수의 고급소비자들만으로는 경제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한다. 소비력을 갖춘 다수의 소비자들이 값싼 물건을 사는 것이 경제적 관점에서도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한다.

청년실업문제가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한다. 일자리 나누자고 부르짖으면서 대체 왜 집배노동자들 채용은 늘리지 않고 있는가? 노동자가 건강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때 그 나라 경제는 건강하고 튼튼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역시 마찬가지다.

집배노동자들에게 건강을 돌려주자! 집배노동자들의 저녁이 보장될 때 우리사회 역시 저녁이 있는 건강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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