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 잘가세요, 슬픈 워낭소리 곁으로~~
편집국에서 // 잘가세요, 슬픈 워낭소리 곁으로~~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9.06.24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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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워낭소리'주인공 할머니의 영면을 기원하며-

그저 평범한 시골 어르신이지만 할머니 마저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울컥 가슴이 멍든 느낌이다.

경북 봉화군 시골마을에서, 한 평생을 살다가 향년 81세로 떠난 이삼순 할머니 말이다.

한국독립영화의 최고 흥행작 ‘워낭소리’를 만들었던 세 주인공이 바로 최원균 할아버지와 이삼순 할머니, 그리고 40살을 살았던 누렁소였는데 그 주인공들이 모두 이 세상과 하직했다.

영화는 2009년에 제작돼 약 국내에서만 300만명이 관람하고 일본과 중국 등 세계 각국에 감동을 선물했다. 그 누렁소는 2011년에 숨졌고 최 할아버지는 2013년에, 그리고 6년 만에 이 할머니마저 워낭소리 곁으로 찾아갔다. 딱 10년 만에 세 주인공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아마도 잔디와 잡초 우거진 쓸쓸한 묘의 흔적만 남아있으리라.

하지만 우리의 가슴엔 지워지지않는 영혼의 울림이 있다.

우리는 이 영화가 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몸마저 가누기 어려웠던 누렁소가 눈을 껌벅이며 생을 마감하기 위해 마지막 숨을 내 쉬던 모습에서 한없이 처량한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최원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모든 생명은 기어이 갈 곳으로 가는 법’이란 우주의 법칙을 깨달았다.

그리고 6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할머니마저 할아버지 곁으로 날아갔다. 한없이 허무함을 느낀다.

아무 연고도 없고, 유명 배우도 아닌 이분들의 마지막 모습에 불현듯 슬픈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일까?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일 뿐인데.

현재 살아있음을 깨닫는 나도 언젠가 저 분들처럼 돌아온 길을 다시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됨일까?

미련을 찾아 ‘워낭소리’를 동영상으로 다시 감상한다.

‘워낭’은 소나 말을 부릴 때 턱 쪽에 매달아 놓고 소리를 내도록 하는 방울을 말한다. 흔히 표준어로 ‘풍경’이라고 하지만 전라도 방언으로 ‘핑경’이라고도 불렀다. 이 ‘핑경 소리’가 나면 소가 지나간다는 신호로 알고 길을 비키거나 멈추곤 했다.

최 할아버지와 이 할머니에겐 누렁소는 그야말로 세 식구였다. 흔히 말하는 반려견과 같은 존재의 반려우(伴侶牛)였다. 멀리 아들딸보다, 옆 집에 사는 이웃보다 더 필요하고 친근한 존재다.

한국의 소들은 수명이 보통 15년, 그런데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이 소는 최 노인 최고 친구이며, 최고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옆집에서는 기계로 모내기를 하며 트랙터로 밭갈이를 하지만 평생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던 최 노인은 ‘남이사 그러던 말던’ 자신의 전용 자가용인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소를 타고 들에 나가며, 나무를 하여 소 구르마에 싣고 80평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이 반려우가 나이 40을 넘기면서 기력이 다해버려 노인네 부부에겐 골칫거리로 등장한다.

“우야꼬, 너도 늙었구나, 나도 늙어가는디...”

한창 때는 할아버지를 구르마에 태우고 다니던 소가 이제 늙어가면서 속도가 느려지더니 점점 걷기도 힘들어지는 시간이 온 것이다. 한 때 즐거운 동반자였으나 일도 못하는 골칫거리로 추락해버린 셈이다.

한평생을 같이해 왔지만 어쩌랴. 이별이 필요한 시기라면 이별해야 하는 운명을...

소를 시장에 내다 팔려고 굳게 맘먹고 내놓았으나 주인 곁을 떠나는 것이 아쉬운 듯 큰 동공을 굴리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누렁소의 모습에 최 할아버지는 그만 다시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차피 이리 된 것, 죽을 때까지 살아야지 뭐, 가자 집으로~~”

그들에게 누렁소는 이미 짐승이 아니며, 팔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뗄레야 뗄 수 없는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준다.

힘없고 늙은 소지만 다시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민요 ‘타박네’가 절로 떠오른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네 어데로 울며 가니

내 어머니 몸둔 곳에 젖 먹으러 울며 간다”

정든 집에서 다시만난 이들은 누렁소에게 인간과 똑같이 좋은 밥도 먹이고, 삶의 의욕을 더하도록 먹걸리도 줘보며 그렇게 시들어가는 생명의 불꽃을 다시 지피려 노력한다.

똑같이 늙어가는 존재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인 인간과 무념무상의 늙은 소 사이에 무수한 상념이 교차한다.

“마이 묵으라, 묵어야 오래 산데이”

누렁소에게 밥을 챙겨주는 이 할머니의 안쓰러움은 끝이 없다. 돌아오지 못할 이국 땅으로 자식을 보내려는 심정과 한 치도 다름없다.

주인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걸을 수만 있다면 주인이 부리는데로, 가자는데로 걸어보려는 늙은 누렁소의 한걸음 한걸음은 죽을 때까지 자기를 거둬준 생의 은인에게 마지막까지 보답하겠다는 슬픈 몸짓으로 다가온다.

수의사를 불러다가 진단한 결과 ‘누렁소가 1년 밖에 못 살 것’이라는 판단을 받자 ‘그럴 리가 없다’며 애써 외면하고 믿지 않으려는 노인네들은 더욱더 정성으로 소를 돌본다.

그러는 사이 하루이틀 자신들도 점점 더 기력이 떨어짐을 느낀 두 노인네들은 가슴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솟아오르는 느낌을 전달받는다.

아마도 마지막 날일까?

기력이 다해간다는 것을 감지한 최 할아버지는 그 동안 소의 모든 것을 구속하고 지배해왔던 코뚜레를 잘라 자유의 몸이 되도록 놓아준다.

자신을 지배하던 무거운 그림자를 벗어던진 누렁소는 그제야 해방을 느끼며 영원히 눈을 감는다.

누구나 가야할 영면의 세계로 향한 것이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그리고 때가 되자 이제는 그 소를 부리던 사람들마저 모두 저 세상으로 갔다.

영화에서 누렁소는 다만 말을 못하는 주인공일 뿐, 죽을 때까지 사람과 하나도 다름없는 감동을 선물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세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말을 못하는 주인공이었다.

누렁소는 말은 못하지만 고독한 몸짓으로 인간에게 심금을 울렸다.

살아간다는 의미, 늙어간다는 의미, 죽어간다는 의미에 대해 긴 긴 상념의 시간을 던져주었다.

주인공은 갔지만 워낭소리가 들려주는 영혼의 메아리는 영원히 살아있다.

천국에서나마 생의 멍애와 코뚜레가 없는 평화의 바다를 거닐기를 기원한다./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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