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 장성에 솔~솔 부는 대통령 만들기 바람. . .
편집국에서 // 장성에 솔~솔 부는 대통령 만들기 바람. . .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9.07.08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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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형을 죽이고 등극한 이방원의 ‘왕자의 난’

‘왕의 자리를 꿈 꾼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왕위를 두고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잔의 소용돌이를 일으켜왔다.

심지어 조선에서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아직 전쟁의 먼지가 가시기도 전에 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형제간에 피 튀기는 ‘왕자의 난’이 일어난다.

조선이 개국한 원년인 1392년 8월. 태조 이성계는 세자 책봉을 고민한다. 자식의 나이로만 따지면 첫 부인 한씨 소생의 장자인 이방우가 세자가 돼야하지만 술 먹기를 좋아해 신하들이 반대했고, 공로로 따지면 다섯째 이방원이 되어야하지만 성격이 거칠어 태조가 꺼려했다. 그러던 와중에 8월 20일 태조는 둘째 부인 강씨 소생의 두 아들 중 막내인 이방석을 세자로 삼기로 한다. 집안에서 가장 어린 막내였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이방원은 크게 분노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골육상잔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 대단한 과감성과 추진력을 보여줬는데 반대파를 제거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거리지 않아 모든 신하들이 두려워했다. 이방원이 25살 때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때려 죽인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같은 두려움은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와 최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방원도 초창기에는 서슬 시퍼런 아버지와 윗 형제들에게 서열상 어찌하지 못했다. 하지만 첫째 아들 이방우는 태조가 세자로 세우려하자 극구 사양 했다. 방우는 결국 고향인 함흥으로 낙향했으나 1년 만에 죽고 만다.

이렇게 장자인 이방우가 죽자 나머지 7명의 아들 가운데 이방원은 자신이야말로 당연히 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첫째 왕비 한씨가 이미 죽고 둘째 왕비 강씨가 이성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래서 강씨의 큰 아들 방번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으나 정도전 등 개국공신들이 방번의 성격이 광망(狂妄)하다고 반대하여 막내인 방석에게 세자를 물려주게 된다.

여기까지는 정도전이 꿈꾸던 세상 즉, 왕실중심의 정부가 아니라 관료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자 했던 개국이론이 맞는 듯 싶었다.

그러나 이때 방석의 나이 불과 11세. 그 때부터 방석은 6년 동안 어머니 강씨의 후원과 정도전, 남은 등 개국공신의 협조를 얻어 세자로서의 자질을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방석이 세자가 된지 6년 만에 친모인 강씨가 죽고 태조마저 병석에 눕게 되자 세자의 배후 새력은 급격히 약화된다.

이방원에게 천금같은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정도전은 이방원의 야심을 눈치 채고 그의 사병들을 혁파하려했는데 이방원이 이를 알고 선수를 쳐 스승이자 개국공신인 정도전을 기습하여 살해한다. 방원은 이에 내친김에 강씨 소생의 이복 동생인 방번, 방석을 모두 살해해 버린다. 이름하여 1차 왕자의 난이다.

하지만 이방원은 왕위를 바로 탐하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야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료들과 백성들에게 형제를 죽이고 왕을 차지한 부도덕한 왕이란 소리를 피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아버지 이성계는 다섯째 아들의 구데타에 충격과 혐오감을 느끼고 정사를 미루다가 왕자의 난 한달 뒤에 둘째 아들 이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니 이가 바로 조선 2대 왕인 정종이다.

이방원은 형인 정종이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뒤에서 스스로 실권을 장악하는데 형제 중 왕위에 오를 가장 경계 대상이었던 바로 위의 형인 넷째 방간이 정치적 활동상을 보이자 방간과 전투를 치르고 승리한다. 이른바 제2차 왕자의 난이다. 그리고 2년 뒤 그토록 그리던 조선의 3대 왕 태종으로 등극한다.

태종은 왕위에 등극했지만 아버지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증오의 대상이었다. 이성계는 말년에 동두천에 있는 소요산에 자주 순행을 나갔는데 태종이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증명하기 위해 매회 순행 길을 배웅하려하자 태조는 그것 마저 싫어하여 아예 한밤중에 출발하기도 했다.

태종의 이러한 행보는 모두가 백성으로부터 듣게 될 ‘효심 깊은 군주’라는 평판을 의식해서였다.

군주는 배고, 백성은 배를 띄우는 물이라는 군주인수(君舟人水)의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천하의 1인자라도 무서워 할 것은 오직 백성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성에 솔솔 부는 ‘대통령 만들기 바람’

벌써부터 꿈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대통령의 꿈을 향해서다.

그것도 궁궐이 있는 한양이 아닌 전라도와 장성지역에서 말이다.

참 일찍부터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본론부터 이야기해보자.

현직 국모총리를 사랑하는 모임인 ‘낙연포럼’이 13일 1박2일 일정으로 순천에서 워크샵을 겸한 하계수련회를 갖는다. 호남조직의 대표 일꾼들이 모이는 순수한 단합대회 차원으로 알려진다. 이밖에 이낙연을 사랑이라는 모임이라는 ‘낙사모’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특별한 활동상은 보이지 않고 있다.

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씨를 사랑하여 만든 ‘임과 함께 통일로’라는 국민포럼도 전국 조직이 착착 구비되면서 광주전남 책임자와 장성 책임자도 명함을 올렸다. 각 시군에 위원장과 사무국장, 청년위원장 등의 직책이 꾸려지고 있다. 이 모임은 SNS에서 활동은 물론이고 오프라인 상에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와함께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선 후보 꿈도 호남에서 움트고 있다. 이에 걸맞게 ‘산악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동해 호남에서도 큰 인물감으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또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추종 행보도 만만치 않다. 대구 출신의 민주당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전국적인 인물 이미지를 내세워 차기 대선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전 장관은 ‘포럼’ 형태의 조직망을 가동, 광주와 전남에 대표 일꾼을 포진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큰 인물을 만나 교우하고 시대를 고민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리 만만하게 인위적으로 만들어 질 수 없다.

그 자리는 ‘하늘이 내린 자리’란 말이 있지 않는가?/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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