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 '타자의 성취' 로 더불어사는 삶을 추구했던 김인후
사 설 // '타자의 성취' 로 더불어사는 삶을 추구했던 김인후
  • 장성투데이
  • 승인 2019.07.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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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하서 김인후 선생의 위대한 사상과 인품이 세인의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영남 유학의 거봉인 퇴계 이황에 대응할 호남 유학의 대표주자로서의 하서 김인후가 아닌 인간 김인후의 생애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생명철학을 지키고 이어나간 생명철학자로서 더 빛나는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하서는 자연의 생명정신과 인간의 도덕생명, 그리고 그것의 함양과 실천을 그 사유의 중심에 두었다.

‘인간이나 만물은 자연의 생명정신을 제 각각의 존재형식 속에 자기화하고 개별화한다. 그러므로 세상 만물은 결코 허무한 존재들이 아니며 제 각각 우주의 본질을 갖는 가치충만한 진실체들이다’

참으로 심오한 표현이다. 하서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자신은 물론, 만물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성취시켜 주어야 할 우주적 과제를 갖는다고 했다.

하서는 이러한 뜻을 엮어 ‘참 자아의 완성과 타자의 성취’라는 의미로 ‘성기성물(成己成物)’이라 표현했다. 모든 사람과 만물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나를 귀히 여겨야 할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참 자아의 성취와 타자의 성취에 공부를 병행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서서 만물의 생성발육을 도와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하서는 정치 행보에 있어서도 그 누구보다 훌륭하고 멋진 자세를 보여줬다.

하서가 가르쳤던 인종이 즉위 1년 만에 죽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모든 것을 버리고 귀향한다. 그러기에 앞서 하서는 부정과 폭력으로 얼룩진 사화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선비들의 신원을 중종에게 호소하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모든 것을 접는다. 훗날 그의 인품과 학식을 아는 조정에서 성균관전적·공조정랑·홍문관교리·성균관직강 등 여러 벼슬을 내리지만 사직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관직이라도 제자인 인종이 죽은 마당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킨 굳건함을 보여준 사례다.

하서는 이러한 삶에 대해 ‘은둔은 진리와 도의를 지킴으로써 궁극적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함으로써 ‘은둔의 삶이 정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정의의 실천을 촉구하는 길’임을 시사했다.

율곡은 하서의 이러한 올곧은 인품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선생의 올바른 거취는 이 나라에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다. 맑은 물 위의 연꽃이요, 화창한 봄 바람에 비 개인 뒤의 달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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