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 500년 조선 최고의 명문장 , 남명 선생의 '단성소'를 읽고 . . .
편집국에서 // 500년 조선 최고의 명문장 , 남명 선생의 '단성소'를 읽고 . . .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9.07.22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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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가 백년 동안 그 속을 벌레한테 파 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 죽었습니다.”

때는 조선 명종 임금 10년, 1555년 찬 서리가 내리는 가을이다.

느닷없이 날아든 한 통의 상소문이 임금의 분노를 일으킨 것을 비롯해 조선의 대신들과 글을 아는 백성들이 탄식을 자아내게 만든다.

어린 명종 왕을 대신하여 천하를 호령하며 섭정하던 문정왕후를 과부라고 지적하고, 왕은 한낱 대를 이을 비린내 나는 남자 정도로 평가절하한 상소문이 도착했다.

뿐만 아니라 사리사욕에 물든 왕의 친인척, 무능한 조정, 무능한 신하들의 행장을 조목조목 열거하고 나라의 어두운 앞날을 걱정하는 글로 가득했으니 ‘왕을 모독한 대역죄’, 즉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를 불문하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 확실했다.

500년 조선 왕조에서 가장 명문장으로 남을 상소문,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년) 선생의 ‘을묘사직소’, 일명 ‘단성소’를 다시 들춰 적어본다.

남명은 비판정신이 투철한 학자로 여러 차례 관직을 내렸으나 한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았으며 마지막으로 단성현감에 봉해지자 사직하면서 이 단성소를 올린다.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疎, 丹城疎, 1555년)

⌜(중략) 전하께서 나라 일을 잘못 다스린 지 이미 오래되어, 나라의 기틀은 이미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났으며, 백성들의 마음 또한 이미 임금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비유하자면 큰 나무가 백년 동안이나 그 속을 벌레한테 파 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 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할 위험한 상태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실정에 있은 지가 오랩니다.

조정에 있는 사람 가운데 충성되고 뜻있는 신하와 일찍 일어나 밤 늦도록 공부하는 선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나라의 형세가 극도에 달하여 지탱 할 수 없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손 쓸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낮은 벼슬아치는 아래서 히히덕거리며 술 마시고 즐기는 일에 정신이 없고, 높은 벼슬아치들은 위에서 거들먹거리며 오직 백성의 재물을 긁어모으는데 정신이 팔려 물고기의 배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데도 그것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오라 조정의 내신들은 파당을 세워 궁중의 왕권을 농락하고 외신들은 향리에서 백성들을 ​착취하여 이리떼처럼 날뛰면서도, 가죽이 다 닳아 없어지면 털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이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신은 깊은 시름에 탄식만 길게 나올 뿐, 낮이면 하늘을 우러르기 수차례였고, ​눈물과 한숨을 누를 길 없어 밤이면 잠 못 이룬 지가 오랩니다.

자전(慈殿:문정왕후를 뜻함)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殿下)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한 아드님(孤嗣)이실 뿐이니, 천가지 백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인심(人心)을 무엇으로 감당해 내며 무엇으로 수습하겠습니까?

이런 때를 당해 부족한 소신과 같이 아무 힘도 없는 자야 더 말해 무엇하오리이까? 위로는 나라의 위태로움을 조금이나마 부지할 수 없을 것이며, 아래로는 임금님의 신하되기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추호라도 헛된 이름을 팔아 임금님의 벼슬을 도적질해서 그 녹(祿)만 먹고 하는 일 없이 지내는 그런 신하가 되는 것을 신은 원치 않습니다.

평소에 조정에서 재물로 사람을 임용하니, 재물만 모이고 백성은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장수의 자격에 합당한 사람이 없고 성에 군졸이 없어서, 외적이 무인지경에 들어오듯 쳐들어왔으니 이것이 어찌 괴상한 일이겠습니까?

하오나 임금님께서는 홀로 하시려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시지를 못합니다.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음악과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말타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그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냐에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임금님께서 하룻밤 사이에 깜짝 놀라 새사람이 되듯 깨달으십시오.

지금부터라도 학문에 힘써 덕을 밝히시고, 백성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게 하십시오. 착함과 덕을 펴는 정치를 하면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고 흩어진 민심이 다시 임금님 곁으로 돌아오고, ​위기를 평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간신배들로 둘러쳐진 어전 앞에서 울리는 시대의 굉음이 500년이 지난 현세에까지 쩌렁쩌렁 통렬히 전해지는 듯하다. 청와대를 능멸한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에게 직소하는 듯하지 않는가.

왕 앞에 일필휘지로 상소문을 내놓고 죽음을 털끝만치도 두려워 않는 그 기개, 어디에서 또 그런 기개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시 조선의 모든 선비들은 곧 사약을 받게 될 남명 선생의 앞날을 걱정했다. 하지만 대노했던 왕과 주변 권력자들은 끓어오를 백성들의 민심과 사림의 선비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머금고 분노를 참는다. 남명 선생이 초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명 선생에게 후학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들은 구국의 근간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등이 그 제자들이었다.

어려운 시대에 추상같은 긴 정의의 그림자를 남긴 남명 선생을 되새기며 여름을 맞는다.

/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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