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영웅호걸의 출현도 작은 만남으로 시작됐다 - 백형모
[편집국 칼럼] 영웅호걸의 출현도 작은 만남으로 시작됐다 - 백형모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9.09.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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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 한 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의 오른팔로써 최고 책사이자 지략가로 장량이란 사람이 있었다. 자를 자방이라 해서 장자방이라고도 불렸다.

경쟁 상대인 젊은 항우보다 24살이나 많이 먹고 군사도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유방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4년 간의 중원의 패권 다툼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장량이라는 명 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량 없는 유방, 장량 없는 한나라 건국은 없었다. 유방은 장량을 일컬어 ‘군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에서 일어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라고 칭찬했다. 그러한 신뢰만큼이나 장량의 건의를 한번도 묵살하거나 이의를 단적이 없을 정도였다.

장량은 허난성 사람으로 집안이 대대로 한(韓)나라의 귀족 가문이었다. 장량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한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아버지가 죽고 장량도 재상에 오르려는 시기인 BC 230년에 한나라가 진(秦)에 멸망하게 되면서 장량의 집안도 몰락하게 된다.

그러자 장량은 조상의 원수인 진나라에 복수를 결심하고, 전 재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복수를 위한 굳은 의지 때문에 동생이 죽었을 때에도 장례 비용을 대주지 않았다고 전한다. 장량은 마침내 창해열사라는 킬러를 고용한 뒤 진시황의 지방 순시 길을 파악한다.

진시황은 39세에 천하를 통일해 진 나라 황제가 되고 50세에 사망하는데 황제 시절에 5번이나 천하를 순시할 정도로 현장을 잘 돌아다녔다. 한번 순시에 1년이 걸렸다고 하니 사전 답사 등을 계산하면 황제시절 대부분을 순시로 보냈다는 결론이다.

당시 진 나라 행렬의 위엄은 모두 검은색으로 수놓은 행렬이었다. 중국 영화에서도 보듯 진나라는 황금색이 아닌 검은색을 선호하고 신하들의 복색이나 깃발, 무기류 등은 모두 검은색이었다. 백성들은 이러한 황제의 긴 행렬을 보기위해 앞 다퉈 몰려들곤 했다. 때문에 황제의 안전 문제도 철통같았다.

이같은 진시황의 행차를 파악한 장량은 허난성의 박랑사 부근에서 4대의 진시황의 황금 마차 가운데 중앙 2대의 마차를 습격, 120근이나 되는 철퇴를 내리쳐 박살낸다. 그러나 시해의 위협을 여러 차례 겪은 노련한 진시황은 그날 순시 마차를 바꿔 타는 바람에 무사하고 저격 주도범인 장량을 찾기로 전국에 수배령을 내린다.

떠돌이 신세가 된 장량은 강소성 하비에 숨어살면서 이름까지 바꾸고 삿갓을 눌러쓰고 지역을 유랑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시냇가에서 한 노인이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인간성을 시험하게 된다. 노인은 신발 한짝을 벗어 시냇가 다리 위에서 흘려 보내고 ‘젊은이 이 신발 좀 주워 주게’하고 시킨다. 귀족 출신으로 재상의 아들인 장량은 ‘이놈의 늙은이가...’하며 대들려다가 자신이 수배자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고분 고분한다. 그런데 이제는 노인네가 한쪽 발을 내밀며 ‘신발을 좀 신겨주게나’하고 강짜를 부린다. 장량은 신분이 탄로 나면 좋을 리 없다고 판단, 끝까지 참는다.

젊은이의 인내심을 알아본 노인은 ‘내 특별히 가르쳐 줄게 있으니 닷새 뒤 새벽에 마을 산등성이로 오게나’하고 사라진다. 노인의 행동을 괴이하게 여긴 장량은 닷새 뒤 새벽에 산등성이에 올랐는데 벌써 노인이 앉아있었다. ‘어허, 배우려는 젊은이가 노인을 이렇게 기다리게 하면 되나? 닷새 뒤 새벽에 다시 오게나’하고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닷새 뒤 꼭두새벽에 그 자리에 올랐으나 역시 노인이 벌써부터 기다리다 ‘젊은 이가 이 무슨 배움의 자세인가?’하고 화를 내고 닷새 뒤에 오라며 사라졌다.

그러자 장량은 다음에는 저녁에 아예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밤을 새웠다. 그랬더니 동이 트기도 전에 노인이 나타났다. 그러자 그 노인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박장대소하며 품 속에서 책 한권을 꺼내 장량에게 내밀었다.

그 책이 바로 그 유명한 ‘태공병법(太公兵法)’이라는 책이다. 장량은 수배기간을 활용, 7년 동안 그 책을 읽고 분석하여 책략가로서의 자질을 갖춘다. 그리고 유방을 만나 당대를 이끌어가는 왕의 최고 책사가 된다. 중국에서는 장량이 이교 다리에서 황석공이라는 노인의 신발을 신겨 주었다는 고사를 이교진리(圯橋進履)라고 부른다.

이날의 이교라는 다리에서의 만남은 중국역사에서 가장 운명적인 만남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곧 장량이 노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혜를 얻을 수 없음이요, 유방은 천하를 통일 할 수도 없었음이다.

지금도 강소성 하비에는 이교라는 다리가 있고 비석에 그 유래를 새겨 놓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밧줄로 강을 건너는 진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훗날 중국의 시성 이백은 이교 다리의 역사를 생각하며 시를 남겼다

“이교 다리 위에서 옛 자취를 생각하고 영웅의 모습을 찬미하노니. 오직 유유히 흐르는 푸른 물결뿐, 황석공은 자취조차 없구나. 사람이 떠나버린 것을 탄식한들 무엇하겠는가. 서주와 사주 고을이 고요하게 텅 비어있는 것을...”

그렇다.

인간의 운명은 모두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만남은 운명이 작동하는 스위치이다.

비록 그것이 우연한 남남과의 만남이든, 피치 못할 혈육과의 만남이든, 아니면 시대적 소용돌이와의 만남이든 말이다.

지금 조국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의 만남이 그렇듯 권력과 명예를 누리게 되는 만남이 있고, 조국 장관과 자유한국당처럼 시대적 악연과의 만남도 있다.

그러나 운명이 어떤 고난의 길이건 남의 것이 아니다. 나의 운명이다.

이 운명을 헤쳐 나가는 것, 역시 자신의 몫이다.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가라. 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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