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이제는 장성도 세계문화유산 시대
[편집국 칼럼] 이제는 장성도 세계문화유산 시대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9.10.28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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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 선생의 [자연가] 한 수 읊을 줄 아는 재치를..."

우리가 국어 시간에 자주 들어봤던 고시 한수를 읊어보자.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절로 수 절로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절로 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그러면서도 깊은 암시를 주는 고시다.

어디서 이런 명시, 명귀가 나왔을까?

이 시를 보면 시란 대단히 경제적인 문학 활동이다.

그 짧은 언어 속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백과 압축을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케 하고 나를 숨긴 듯하면서 그림자처럼 담아내는 마력을 지녔다.

알 수 없는 시공(時空)의 흐름이 있어서일까?

이 시에서는 한 글자도 빼놓을 수 없는 시어들이 제 자리의 품격을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절로절로’라는 표현은 인고의 세월을 안고 흐름따라 사는 고고한 인생의 상징어로 나타난다. 푸른 산과 맑은 물의 사이에서 유유하고도 구불구불거리며 부대끼는 인생사를 그리고 있다.

산이 저렇게 생기고, 물이 저렇게 흐르는 것 하나하나가 누가 그렇게 만들어서 그런게 아니고 다 우주의 뜻이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다가 ‘그런 산수간에 나도 절로 태어났고 그 자연의 이치를 거를 수 없으니 절로 늙어가리니...’하는 자연의 포용을 담고 있다. 나 역시 자연 속에서 저절로 생겨난 몸이니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는 셈이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며 나이를 먹는 것이야말로 인간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 계절이 바뀌는 것에 따라 순응해서 살아야만 한다.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하려고 한들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게 삶을 사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런 순응의 이치를 저자는 ‘절로절로’라는 표현력으로 통하게 하고 있다. 초장에서 종장에 이르기까지 ‘절로절로’라는 구절을 넣어 여러 번 반복되어 리듬감을 준다. 한 구절 한 구절 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의 위엄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이 화제의 작품이 누구 작이냐는 것이다.

왜냐면 비슷한 시어와 표현이라 할지라도 작가의 이념과 시대상에 따라 함축하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작자에 대해서 문헌에 따라 송시열(宋時烈)·이황(李愰)·김인후(金麟厚) 등 여러 사람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하서 김인후(1510~1560)의 문집인 『하서집(河西集)』에 이 작품의 한역가(漢譯歌)가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김인후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시의 제목도 『하서집』의 한역가에 ‘절로절로’를 ‘자연자연(自然自然)’이라 한 데에서 후세사람들이 붙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서 선생의 시라고 믿는다. 그 한시를 보자.

自然歌 <金麟厚>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山自然 水自然 山水間我亦自然

已矣哉 自然生來人生 將自然自然老

<河西全集 續集>

이 간단한 한시는 自然이란 단어 외에 靑山과 綠水 그리고 그 사이에 처한 我가 전부이며 핵심단어다. 그런데도 그토록 심오한 함축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관료이자 문인이며 사상가인 하서 선생이 어찌 이런 한가한 시절가를 읊었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하서의 우여곡절 인생사를 잠시 살펴봐야 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하서는 훗날 인종이 된 세자의 교육을 책임진 스승이었다. 그러다가 왕을 둘러싼 궁중 정치의 온갖 추악함에 혐오감을 느끼고 옥과 현감을 자청해 나가는데 이 때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30세의 나이로 왕위를 잇는다. 그러자 인종은 중종의 장례식에 국장을 책임지는 제술관으로 하서를 불러 중용의 뜻을 보인다. 하서에게 장차 큰 일을 맡기려는 인종의 뜻이 내포돼 있었다. 하지만 인종이 이름모를 병으로 즉위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절망감을 느낀다. 특히나 인종이 병석에 있을 때 병문안과 진료에 참여를 요청했으나 내의원에서 거절하자 궁중의 무서운 음모와 권력쟁투에 혐오감을 느끼고 36세의 젊은 나이에 고향 장성으로 돌아온다.

그 때 연로한 부모님을 봉양한다는 효심과 신병을 이유로 고향에 내려왔는데 그 뒤 예상한대로 인종을 따르던 정치 세력들이 윤원형 등의 소윤파에 의해 큰 화를 당하는 을사사화를 맞는다. 만약 하서도 그 때 낙향하지 않았더라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서는 낙향 이후 5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5년 간 오로지 학문과 후학 교육, 그리고 시주(詩酒)를 즐기며 살았다. 인종의 기일에는 산속에 들어가 통곡을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세월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한시 <자연가>는 그저 자연을 음미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시인의 성정을 노래하는 단순한 시라고 보여지지 않는다.

시대의 굴곡을 몸소 체감하며 권력의 위력과 무상함을 겪어본 사상가의 가슴에서 ‘산 절로 물 절로’를 노래 할 때 얼마나 깊은 회한이 서렸을까?

그로부터 어느덧 500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의 탄식이 서린 필암서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장성은 세계에 내놓을 또하나의 보석을 간직한 명문 고을이 됐다.

이 쯤 되면 5만 장성 군민들이 하서의 <자연가> 한 수 쯤은 외워 두고 안주를 기다릴 때 읊어보는 재치를 간직한다면 어떨까?/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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