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歲寒圖 . . . 배신의 계절을 지나야 그 푸르름을 알까
[편집국 칼럼] 歲寒圖 . . . 배신의 계절을 지나야 그 푸르름을 알까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9.12.02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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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에 접어들었다.

매섭고 혹독한 계절의 시작이다.

어릴 적 기억으론 왜 그리도 춥고 쌀쌀했던지...

북풍이 유난히 강한 장성 땅은 하시라도 폭설이 불어 닥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이때쯤이면 꼭 떠올려지는 그림이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歲寒圖)’다.

너무 단순명료하여 눈에 쏙 들어온 그림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흰 눈발 위의 소나무 그림.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강인한 회상으로 몰아넣는 것일까?

세한도는 사람 사는 집이라고도 볼 수 없는 단촐한 초가집 한 채를 중심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그루와 잣나무가 세 그루가 서 있다. 소나무는 세월을 못 이겨 큰 덩치를 지탱하기 어려울 만큼 힘 겨워 보인다. 겨우 끝자락에 침엽수임을 알리는 소나무 잎이 몇 개 솟아 살아있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집 주변에 둘러져있는 잣나무도 가냘퍼 보이긴 마찬가지다. 초가집은 동그라미 모양의 문이 뚫려 있을 뿐 창문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한눈에 봐도 차가운 눈발 위에 황량함만 가득하다.

그런데 어찌 이 세한도가 고난과 극복의 상징으로 우리를 숙연케 할까?

추사는 정치적 모략에 휘말려 나이 55세이던 1840년 제주도에 유배된다. 보통 유배가 아니라 위리안치(圍籬安置) 형을 받고 8년 동안 묶이게 된다. 위리안치는 집 바깥을 탱자나무로 두르고 그 안에서만 살도록 하는 형벌이다. 다산 정약용이 고을을 돌아다닐 수 있는 주군안치(州郡安置) 유배형을 받은 것에 비하면 비교도 될 수 없는 고독한 형벌이었다. 의식주 모든 게 통제됐고 질병에 시달려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부인이 사별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하염없는 통곡으로만 보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추사는 학문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제자들과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과 예술을 놓지 않았다.

그런 유배 생활에서도 추사를 섬기는 제자 이상적이 중국에 외교 사신으로 나갔다오면서 구입해온 서적들을 보내준다. 왕명을 받드는 신하가 유배당한 사람과 친분을 이어가는 것은 자신도 정치모략에 휘말릴 수 있는 정치적 모험인데도 불구하고 이상적은 유배지에 갇힌 스승에게 끊임없이 진귀한 서적을 구해다 주곤 했다.

유배지의 스승에게 선진 학문을 선물하기 위해 만 리 밖 북경에서 여러 해를 걸려 구해 한양으로 온 뒤 육로로 항구까지 운송하고 또다시 배로 제주도에 전달하기에 보통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추사가 이러한 책을 손에 쥐게 되는 유배 5년 째는 한때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고위 관료층의 친구들 소식도 끊어지고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도 잊혀져갈 때였다.

그래서 추사는 그 고마운 마음으로 자신의 심사와 세상의 이치를 담은 발문(跋文·그림의 사연과 내용을 간략하게 적은 글)을 적은 그림 한 폭을 제자인 이상적에게 선물한다.

세한도가 세인의 주목을 끄는 건 그림 보다 불세출의 명필로 쓴 문장이다. 그 문장 중에 현대인들의 뇌리를 강하게 스치는 두 가지 문구가 있다.

첫째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즉 ‘한겨울 추위가 지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늘 푸르게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의미다.

논어의 ‘자한’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여름에 비친 푸르름은 어느 나무나 다 간직할 수 있는 푸르름이다. 따뜻한 태양과 적당한 온기만 있으면 누구나 빛을 발할 수 있는 그저 보통의 푸르름일 뿐이다.

그러나 북풍한설에 온 세상이 옷 벗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을 때 느끼는 한겨울 송백의 푸르름은 보통으로 뽐 낼 수 없는 지난한 가치다.

인간 세상도 이와 다름없다는 얘기리라.

세한도 발문에 새겨진 또하나의 문장은 바로 ‘이권리합자 권리진이교소(以權利合者 權利盡以交疎)’란 말이다.

사마천 ‘사기’에 나온 구절로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자들은 그 권력이 다하면 흩어질 뿐이다’라는 뜻이다.

비록 추사 선생이 제자에게 새겨준 문장이긴 하지만 권력의 한 쪽 끝자락만을 좇는 뭇 세상 사람들에 대한 경고장이 아닐 수 없다.

권세를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과 이익만을 위해 손잡은 자들은 권력과 이익이 다하면 앙상한 싸움의 흔적만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로 변하게 된다.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바야흐로 배신의 계절이다. 상대를 죽여야 사는 헐뜯기의 수난사가 예고된다.

하지만 그 뒤에 남을 것을 생각해야 한다. 정치를 하려는 이념이 확고해야하며 그것을 실천하려는 방법이 정도여야 한다.

세한도에서 느낄 수 있는, 한겨울에야 진정한 푸르름을 말해주는 세한연후의 송백처럼 말이다.

/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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