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가정법...'이순신이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면?'
[편집국 칼럼]가정법...'이순신이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면?'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9.12.23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에 가정법이란 아무소용 없는 일이다.

이미 시간은 흘렀고 결과는 기록으로만 남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법은 극적인 상황에서 두드러진다.

우리 역사에서 국운의 존폐를 가를 정도의 가정법이 가장 왕성하게 일고 있는 시기는 바로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590년 왜구의 전쟁 징후를 감지하기 위해 선조가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할 때 당파가 다른 두 신하를 보냈다. 하지만 일행은 돌아와 각각 상반된 보고를 한다.

서인(西人)인 정사(正使) 황윤길은 “앞으로 반드시 전쟁의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 보고했고, 동인(東人)인 부사(副使) 김성일은 이에 맞서 “전혀 그런 조짐이 없다”고 했다.

무사안일을 기대했던 선조와 조정은 김성일의 말을 좇아 전쟁 준비를 안 하다가 임진왜란을 당해 임금은 옷이 찢긴 채 평안도 의주로 피난가고 백성들은 살육 당하며 나라가 망가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만약 황윤길의 말을 믿고 2년 동안 철저히 전쟁준비를 했다면 조선은 어땠을 것인가?

반면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또 다른 가정법을 던진다.

만약 임진왜란 때 쳐들어 온 일본의 60만 대군이 이순신 장군을 물리치고 조선을 단숨에 장악했다면 중국을 넘어 아랍까지 진출하는 세계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조선은 이순신의 해군력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 조선 전체의 국력이나 조정의 부패 정도로는 왜놈들의 한순간 먹잇감 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명나라도 기울대로 기울어가는 형국이어서 조선을 넘으면 명나라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고 일본의 위세는 아시아 제국의 지배자로 등극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일본 사학자들이 그렇게 아쉬워하는 정점은 이순신을 넘지 못했다는 그 순간이다.

반면 한국의 사학자들은 이 시기에 대해 또다른 가정법을 제기한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 승리 이후 곽제우와 권율과 더불어 썩어가는 조정과 임금을 바꾸기 위해 도성을 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더 나아가 도성을 장악한 후 일본과 화친조약을 체결하고, 북벌을 계획했다면 지금은?

이순신이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었다는 가설은 그 이전에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과 똑같은 수순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왕조가 탄생, 이 나라의 역사책이 바뀌는 결과가 된다.

또 하나의 가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임진왜란을 맞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선조는 한 때 중국으로 피난가려는 생각을 한다. 말이 피난이지 지금으로 본다면 국왕의 망명이다.

하지만 유성룡은 임진왜란 초기, 선조의 비겁한 피난길을 가로막는다.

1592년 4월 14일과 15일 부산진성 및 동래성이 함락되고 20일도 안된 5월 3일, 한양에 일본군 제1, 2, 3군이 무혈 입성했다. 그러자 선조를 비롯한 조정의 중신 대부분은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신하면서 나라의 존망보다 자신들의 안위만을 찾고 있었다. 무능하고 소심한 선조는 승지 이항복에게 명나라에 기대어 몸을 보존하면 어떠냐고 슬쩍 흘렸다.

“승지의 뜻은 어떠한가?”

“만약 형세와 힘이 궁하여 팔도가 모두 함락된다면 바로 명나라에 가서 호소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이항복의 답이었다.

그 순간은 조선이 살아남아 항거하는가, 명나라의 속국이 되는가를 가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선조가 다시 유성룡의 의견을 물었다. 이 때 유성룡은 선조의 참모로서 가장 결정적 선택을 주도한다.

“안 됩니다. 임금이 우리 국토 밖으로 한 걸음만 떠나면 조선은 우리 땅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선조는 “내부(內附, 중국에 가서 붙는 것)하는 것이 본래 나의 뜻”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계속 밀어붙였다. 유성룡은 끝까지 반대하며 이항복을 꾸짖었다. “관동과 관북 지역이 버티고 있고, 호남에서 의병도 일어날 텐데 어떻게 경솔히 나라를 버리자는 의논을 내놓는가”라는 질책이었다.

만약 이 말을 듣지 않고 선조가 명나라로 들어갔으면 조선 땅은 중국과 일본의 전쟁터가 되어 누가 이기든 승자의 속국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많은 가정을 유추하며 과거사를 배운다.

만약 그랬다면 어떠했을 것인가?

영어로 말하자면 “what if~?”다.

그렇다.

두 갈래 길에서 좌냐 우냐의 선택은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느냐의 못하느냐의 기로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미래를 짚어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리더의 선택은 집단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이 선택에는 판단의 지표가 정확해야 한다. 듣고 보는 것이 정확해야 오판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 법이다.

고사에 귀이천목(貴耳賤目)이란 말이 있다.

‘귀로 듣는 것은 중히 여기고, 가까이서 본 것은 하찮게 여긴다’는 말이다.

보지도 못한 소문은 믿고, 가까이 있는 진실은 보고도 안 믿으려는 세태에 보내는 경고장이다.

혼동의 시대에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믿으려는 자세가 더욱 필요한 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