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조고각하(照顧脚下)! 허리 굽혀 발 아래를 살피라!
[편집국 칼럼] 조고각하(照顧脚下)! 허리 굽혀 발 아래를 살피라!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01.06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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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곳을 향하여!”

야망을 품은 지인들에게 새해 격려의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원대한 이상을 가진 자 만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하지만 명심보감에서는 또다른 조언을 하고 있다.

“위만 보고 사는 자, 늘 부족함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아래를 추스르고 거두는 자, 늘 풍요로움에 행복을 느낀다”

그렇다.

그것은 생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이긴 하다.

가치를 ‘저 위’에 두는 것과 ‘발 아래’에 두는 것은 한치 마음 가짐의 차이지만 행복을 누리는 차이는 천길 차이가 난다.

고찰의 선방 마루에 걸린 주련(柱聯)에 가끔 조고각하(照顧脚下)란 글귀를 볼 수 있다.

‘照:비출 조, 顧:돌아볼 고, 脚:다리 각, 下:아래 하’란 글자다.

글자 그대로 본다면 ‘발 아래를 잘 살피라’는 뜻이다.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발 아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저 멀리 있는 원대한 구도자의 이상보다 당장 발 아래 현실이 더 중하고 깨달음을 실천할 수 있는 현장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래서인지 선방의 토방에는 벗어놓은 신발들이 유난히 가지런한 것을 볼 수 있다.

신발을 벗을 때 제 자리에 놓았는 지, 나갈 때 바로 신을 수 있게 놓았는 지 살펴보고 행동하는 게 구도자의 길이라 가르치고 있다. 신발 하나 벗어놓은 것도 수행의 한 단면이라고 이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신발 정돈이 잘 되어 있는 집은 도둑도 그냥 간다’는 말이 있다. 신발이 저 정도 가지런히 정돈된 집은 털어봐야 가져갈 것이 없다는 가르침이다.

조고각하에는 신발을 가지런히 한다는 의미는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보통은 마루 위로 오르려면 몸과 머리를 숙여 신발을 벗어야 한다. 그런데 그 신발을 가지런히 하려면 손을 땅에 댈 정도로 허리를 구부려야 만이 가능하다.

신발을 벗고 신는 데는 지위고하가 없다. 왕 노릇이나 하면 모를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모두가 깊이 허리를 구부려야 만이 가능한 일이다.

조고각하는 낮은 자세로 모든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내 주변부터, 내 발밑부터 잘 살피라는 큰 뜻이 담겨있다.

선(禪)의 본질인 ‘바로’ ‘지금’ ‘여기서’ ‘자기 일’을 통해서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같다.

조고각하라는 말에는 ‘우리의 삶 전체를 살피고 돌아보라’는 뜻이 담겨있다.

불가에서는 살피고 돌아본다는 것을 수행(修行)이라 한다.

수행(修行)이라는 것은 닦는다는 말이다.

무엇을 닦는가?

행(行)을 닦는다.

행이란 우리 행동 행위(行爲)을 말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한다.

업은 산스크리트어로 까르마(karma)라고 하는데 ‘행위’라는 뜻이다.

사람의 행위를 살펴보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를 삼업(三業)이라 했다.

몸(身)으로 짓는 행위, 입(口)으로 짓는 행위, 마음(意)으로 짓는 행위가 있다.

이 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나누면 열 가지가 된다.

몸으로 짓는 업은 세 가지다.

죽이는 것(살생 殺生), 도둑질 하는 것(투도 偸盜), 삿된 음행(사음 邪淫)이다.

입으로 짓는 업은 네 가지다.

거짓말(망어 妄語), 꾸밈말(기어 綺語), 이간질(양설 兩舌) 험한 악담(악담 惡談)이다.

마음으로 짓는 업은 세 가지다. 사람의 착한 마음을 헤치는 세가지 번뇌라하여 삼독(三毒)이라 칭했다.

지나친 욕심(탐욕 貪慾), 화내는 것(진에 瞋恚), 어리석은 것(치암 痴闇)이다.

이러한 열 가지 업을 닦는다 해서 수행이라고 한다.

착한 마음으로 닦으면 열 가지 착한 일이 된다.

나쁜 마음으로 닦지 못하면 열 가지 악한 일이 된다.

인도 전통에서는 모든 행위는 이 생이 아니면 다음 생에서라도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믿는다. 이를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했다. 착한 행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고, 악한 행위는 괴로운 결과를 낳는다는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의 명제로 정리된다.

구도자에게 업은 해탈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인간을 윤회의 굴레로 묶는 것이 다름 아닌 업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악의 굴레로 빠져들게 만드는 달콤한 유혹이다.

‘허리 굽혀 우리 발 아래부터 살펴라’ 조고각하(照顧脚下)는 나부터 통찰하고 닦아서 우리 공동체 사회가 진지한 삶을 살게 하는 각성제가 아닐까 한다.

만물이 엉겨서 돌아가는 세상은 중생들의 업의 힘이 만들어 낸 종합 결과물이다.

2020년, 새날을 맞는 우리가 수행 규칙으로 삼아야 할 네 글자이다.

/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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