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태산은 한줌 흙도 마다하지 않는다! (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
[편집국 칼럼] 태산은 한줌 흙도 마다하지 않는다! (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01.13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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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군웅들은 하나같이 파란만장한 인생경력을 보여준다.

난세에는 모든 사람들이 우여곡절을 겪지만 유달리 지혜와 인재를 모아 난국을 평정하여 치국평천하를 이룬 사람이 불세출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중국 서한(西漢)을 건국한 3대 공신을 ‘서한삼걸(西漢三傑)’이라 한다. 한신(韓信), 소하(蕭何), 장량(張良) 세 사람을 일컫는다.

이 가운데 장량이란 사람은 한때 역모죄를 당한 지명 수배범에서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영웅의 대열에 오르는 기막힌 운명적 만남의 주인공이다.

장량이 서한의 건국 공신이 된 것은 병법서의 원조로 알려진 <태공 병법>을 익힌 덕택이다. 장량은 강태공이 지은 《태공 병법》을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소리 내어 읽었다. 그렇게 장량은 병법을 익혀 탁월한 전략가가 되었다. 장량은 유방을 만나 <태공 병법>을 설파해 유방의 눈에 들게 되고 이후 유방은 늘 장량의 계책을 따랐다. 유방은 장량의 도움으로 전장에서 통솔력을 발휘, 항우와의 최후 쟁패에서 승리했다.

훗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다음 군신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자신이 천하를 얻고 항우가 천하를 잃은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구구절절이 유방의 장점을 설명했다.

하지만 유방은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곁에 세 명의 인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그 유명한 ‘서한삼걸’을 칭송했다.

“군대 막사 안에서 계책을 짜내어 천 리 밖의 승부를 결정짓는 일에서 나는 장자방(장량) 보다 못하다. 나라 안에서 백성을 어루만지며 수송로가 끊어지지 않게 양식을 보급하는데 있어서 나는 소하만 못하다. 또 백만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면 점령하고 싸웠다하면 승리하는 일에 있어서 나는 한신만 못하다”

든든한 장수의 보좌가 있었기에 천하통일이 가능했다고 덕을 부하들에게 돌렸다.

그렇다면 장량은 어떻게 《태공 병법》을 얻어 탁월한 전략가가 되었을까?

장량은 태공도인이라는 신비한 노인을 만나 비전(秘傳)의 병법서를 얻는 기연(奇緣)을 통해 병법과 천하 책략을 공부하는 행운을 얻었다.

장량은 한나라 부유한 귀족 출신이었다. 그런데 장량이 젊은 날 한나라가 진나라에게 망하고 말았다. 이에 혈기 왕성한 장량은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가세를 기울게 한 진시황에게 복수심을 품었다.

장량은 재산을 털어 ‘창해역사’라는 용맹한 장수(요즘 말로 저격수)를 고용해 진시황이 탄 수레를 습격했다. 그런데 수레를 잘못 지목해 암살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장량은 졸지에 현상수배범이 되어 세상을 떠돌게 되었다.

이렇게 세상을 떠돌다 하루는 다리 위를 걸어가고 있는데 허름한 삼베옷을 입은 노인을 만났다. 그런데 노인이 장량을 만나자 일부러 한 쪽 신발을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며 장량에게 주어오라고 했다. 장량은 욱하는 성질을 참고 내려가 신발을 주어왔다. 싸움이라도 하다가 자신이 암살범이라는 신분이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자 노인이 신발을 신겨달라고 했다. 장량은 어이가 없었지만 또 참고 신을 신겨주었다. 이를 본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그놈 참 가르칠만하다”라고 하면서 좋은 가르침을 줄 터이니 닷새 뒤 새벽에 여기서 만나자고 했다.

닷새 뒤 장량이 그곳에 갔더니 노인이 벌써 와 있었다. 노인이 장량을 보자 “배우려는 작자가 늙은이보다 늦었다”며 호통을 쳤다. 그러면서 닷새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장량은 닷새 뒤 이번에는 노인보다 빨리 도착하려고 새벽닭이 울기 전에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노인이 먼저 와 있었다. 노인은 또 호통을 치며 닷새 뒤에 오라고 했다.

장량은 이번에는 아예 잠을 자지 않고 한밤중에 그 다리로 갔다. 이번에는 장량이 먼저 도착했다. 노인이 잠시 뒤 와서는 기쁜 얼굴로 장량에게 낡은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노인이 “이 책을 공부하면 제왕의 스승이 될 수 있는데, 10년이면 그 뜻을 이룰 것이다”라고 했다. 장량이 날이 밝아 책을 살펴보니 그 책이 바로 《태공 병법》이었다.

중국 섬서성 유패현에는 지금도 장량과 태공도인이 만났던 강가에 ‘이교’라 하는 다리를 세워 그 역사를 기리고 있다.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인내와 겸손과 부단한 노력이다. 장량이 노인에게 겸손한 태도와 인내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면 장량이란 사람은 그냥 지명수배범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리고 유방의 천하통일에서 주는 또 하나의 가르침은 ‘주변의 덕’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희생과 공이 있었기에 나의 영광이 가능했다’고 인정하고 상대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영웅이다.

이런 처세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승리하고도 결과적으로 패망에 이르기가 일쑤다. 때로는 동지를 적으로 등 돌리게 만든다.

적을 동지로 만드는 현자의 축에 들지는 못할망정, 동지를 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보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진 나라 승상이었던 ‘이사(李斯)’는 이런 멋진 명언을 남겼다.

태산불사토양고대(泰山不辭土壤 故大)

하해불택세류고심(河海不擇細流 故深)

“태산은 한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고 마다않고 받아들여서 높고,

강과 바다는 보잘 것 없는 개울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서 깊어진다.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던 이사가 진나라로 건너가 관리(客卿)가 되어 진시황에게 ‘천하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재를 널리 등용해야만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충언하던 말이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할지, 어떤 정치가 현명한 것인지에 던지는 한수 명언이다.

/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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