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장량의 지지(知止) '멈춰야 할 때' 를 아는가?
[편집국 칼럼] 장량의 지지(知止) '멈춰야 할 때' 를 아는가?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02.10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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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형모 편집국장

2,100년 전, 중국 진말 한초(秦末 漢初)에 나타난 중국사를 대표하는 책략가이자 명장 세 사람을 서한삼걸(西漢三杰)이라고 한다. 한신과 소하, 장량을 일컫는다.

모두 유방을 도와 난세를 평정하고 한(漢) 나라를 세우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가운데 대중들에게 장자방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장량(張良: ? ~ 기원전 186년)이라는 인물은 가장 멋있는 물러남을 남긴 인물로 오늘날까지 칭송을 받는다.

장량은 본래 한(韓) 나라 명문가의 귀족 출신이었지만 진시황이 한나라를 멸망시키자 장량은 조국과 가문을 함께 잃게 되면서 진나라에 반기를 품었다. 그는 모든 재산을 털어 진시황 암살계획을 세우고 킬러를 고용해 진시황의 수레를 요격했으나 실패해 각국을 떠돌다가 유방의 품으로 들어간다.

장량이 항우와 유방이 겨루는 초한 쟁패전에 뛰어들어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정치가이자 지략가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장량은 유방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즉 대국적인 흐름이 필요할 때에는 치세의 정책으로, 전쟁을 위해서는 치밀한 계략으로, 신변이 위험할 때는 때로는 칼과 온몸으로 유방을 도와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내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여 한의 고조로 등극하게 되는 최고 수훈갑의 신하가 된다. 유방은 장량의 제안이나 건의를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 공을 안 유방은 훗날
“군중 장막 안에서 계책을 내어 천리 밖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것은 모두 장자방(장량)의 공이다. 장자방으로 하여금 제나라 땅 3만호를 스스로 골라 봉읍으로 갖게 하라”
고 했다.

최고의 개국공신으로 3만호의 땅, 지금 같으면 몇 개 시군을 합한 정도의 땅을 골라 가지게 한 셈이다. 장량의 존재에 대해 고마움과 신임을 반증하는 파격적인 은혜였다.

하지만 장량은
“제가 폐하를 만난 것은 하늘이 그렇게 배려해준 것이며, 또 폐하는 저의 계책을 받아주셨기 때문에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이룬 공이 아니라 폐하의 배려로 인한 일인데 어찌 감히 3만호를 받겠습니까?”
라고 반문하며 장량과 유방이 만났던 지방의 작은 땅을 기념으로 갖겠다고 사양한다.

역사의 어느 전환점이건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개국공신이 등장하고 서열에 따라 녹봉이 주어지는 것이 필연이었는데 장량 만큼은 그러한 무리들의 역사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공을 평가하여 좀 더 높은 벼슬을, 좀 더 넓은 봉읍을 주지 않나 노심초사하고 논공행상을 일삼는 여타의 무리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

여기서 장량은 우리에게 ‘위대한 유산 즉 지지(知止)’라는 ‘멈출 줄 아는 지혜’를 주고 있다.

권력과 명예에 대한 집념, 재물에 대한 욕구가 구름처럼 일고 있는 욕망의 바다에서 인간이 어느 시점에서 그 욕망을 버려야 하는지,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에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장량은 어떻게 모든 인간이 갖는 욕망으로부터 그토록 초연할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자신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었다.

첫째는 난세를 지나오면서 자신의 역할이 제대로 발휘되기까지는 하늘과 인연의 힘이 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겸손함이었다. 둘째는 천하통일 이후에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고 물러날 줄 아는 통찰력이었다. 셋째는 물질에 대해 과감히 버릴 수 있는 무욕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장량의 행동을 분석한다면 자신의 조국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유방이라는 군주를 선택할 줄 아는 지혜, 그리고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뒤를 볼 줄 아는 현명함을 두루 갖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천하통일 뒤에는 모략이 판을 치는 정치가들이 득실거려 명예가 훼손될 것을 예감한 것이다.

이에 비해 다른 서한삼걸은 어떠했는가?

소하는 처세술에 너무 의지해 유방의 심한 의심을 받았고 한신은 토사구팽의 고사성어를 남기며 치욕의 삶을 살았다. 

반면, 장량은 한 고조가 천하를 평정한 이후 황제가 되어 그를 가까기 두려고 하자 과감히 물러날 뜻을 밝힌다. 뒤를 볼 줄 아는 현명함이 돋보인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한나라 재상을 지냈고 진나라에 의해 한나라가 망하자 만금의 재산을 아까워 하지 않고 진나라에 원수를 갚으려 하다가 천하를 진동시켰다. 오늘 세치의 혀로 황제의 스승이 되고 만호의 봉읍을 받았으며 기 지위는 열후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포의(布衣:벼슬 없는 선비)로 시작한 사람으로 지극히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이니 나는 이것에 지극히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인간 세상의 일을 모두 잊어버리고 적송자(赤松子:신선)의 뒤를 따라 노닐고자 할 뿐이다”

그의 뜻대로 소박한 음식을 먹고 몸을 가벼이 하면서 말년을 보낸 것으로 기록돼있다.

권력과 인간의 속성을 바로 보고 행동에 멈춤을 아는 지혜를 던져주는 장량을 일컬어 오늘날에도 권력의 장자방이라고 부르곤 한다.

노무현의 장자방으로 누구, 문재인의 장자방으로 누구 하는 식으로 그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오늘날엔 물러날 줄 아는 정치가들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권력을 위해 당파 주위에서 끊임없이 맴돌거나, 새로운 당파를 세우거나, 외국을 주유하다 돌아와 국민께 다시 엎드리는 정치꾼들이 득실거린다.

장량이 그리워지는 입춘이다.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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