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칼럼] '이러케 비가 내려쌋는 밤' 미당 서정주를 생각하며
[편집국칼럼] '이러케 비가 내려쌋는 밤' 미당 서정주를 생각하며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03.02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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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물러가는 길목은 참 질퍽하다.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를 앞두고 하얀 눈송이가 내려와 대지를 뒤덮더니 며칠 뒤에는 빗방울 소리가 대지를 깨운다. 주룩주룩 쏟아지는 빗방울이 무정하다. 계절을 바꾸어 세월을 만들 요량인 가.

아무리 코로나 19가 요동쳐도 봄으로 가는 길목이 분명한 것 같다.

어느새 새하얗던 산천은 빗물에 옷깃을 흠뻑 적신 채 흙을 밟고 동면을 깨운다. 곳곳에 보이지 않는 새싹이 보인다.

3월이 오기 전, 물러가는 2월이 아쉽다.

비는 풍요의 원천이며 풍년의 약속이다. 비는 추억의 열차다. 세월의 반대편이다.

그치지 않는 빗소리에 어머니의 추억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아들을 재우던 밤도 이렇게 빗줄기가 쏟아졌다.

 

비 나리는 밤

-徐廷柱-

 

이러케 비가 나려쌋는 밤

杜鵑이는 어느 골작에서 노래를 부릅니까.

해지기 전 내 회파람으로서 궁장을 마추엇든

그 이름 모를 새들은 또 어데가 잇습니까.

하늘의 별들은

모조리 죽어버렷습니다.

念佛외우든 老僧이 잠든지 오래고

처마 끝에 풍경이 뎅그랑 우는 이 밤

 

어머니여 기인 이 밤을 어찌하오리까.

당신은 머언 옛날

옛이얘기 들려주며 아들을 재웟지요

그러면 오늘 밤도 아들은

어머니 이얘기 듣겟습니다.

당신은 지금 아득한 들을 넘어서

비나리는 이 밤을 내 숲속으로 날러오시겟습니까?

(雲門庵)

 

지은이 이름을 밝혔다시피 이 시는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이 쓴 시다.

역사가들이 말하는 친일파이자 변절자란 멍에는 논외로 치고 시만 살펴보기로 하자.

미당은 그의 나이 21세인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시(비나리는밤)는 그의 나이 19세때인 19341123일자에 무명작가로서 동아일보에 기고했던, ‘독자의 시로 보여 진다. 상상하기 어려운 나이에 놀라운 창작성이 돋보이는 시다.

그 언어구사력이나 세월을 굽어보는 혜안에서 누가 망해가는 식민지 국가의 19세 소년의 시라고 할 것인가.

전북 고창 출신인 미당은 지금도 문학도로서의 위상은 대단하다.

보통 사람들도 미당의 시 한두 소절 쯤 외우지 못하는 이가 없을 정도의 국민시인으로 손 꼽아도 손색이 없다.

국문학계에서 미당의 남긴 문학성에 대해 남긴 찬사를 보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어느 누구보다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고 우리민족고유의 정서를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킨 천재 시인’>

<한국인의 마음 밑바닥에 흐르는 가락을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로 표현한 언어의 마술사>

또다른 문학가들은 우리 시는 그가 신들린 듯 눈부시게 노래한 모국어와 시의 신화를 풍성하고 영원한 선물로 물려받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미당이 일제 말 징용을 지지하는 글과 10여 편의 친일시를 발표해 친일작가로 낙인을 찍히게 된 것과 해방 후 이승만 독재정권과의 관계, 80년대 군부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해 협력한 일 등 이 시인에게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때문에 사후 20주년을 맞아 최근 미당의 이같은 행적과 시인으로서의 업적과는 별개로 평가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래서 어느 평론가는 이렇게 탄식한다.

미당의 시를 읽으면서 여전히 두 개의 문장이 맴돈다. 그는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 아니다!-,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 시인이란 과연 누구인가?”

이같은 논란은 차치하고 운문암에서 지은 것으로 보이는 <비 나리는 밤>을 보자.

운문암은 장성 백양사의 산내 암자로 고려시대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백양사 8개 암자 중 대표암자였으며, 백양사 뒤 계곡을 끼고 3.5위에 있다. 미당이 어떤 이유로 이곳에 왔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19346월 서정주는 참선을 하겠다며 홀연 금강산 장안사를 찾아갔는데 당대의 고승 만공 스님이 주석하고 있었다. 만공이 보기에 서정주가 중이 될 인물은 아니었던 듯하여 점잖게 타일러 하산시킨 것으로 알려진다.

운문암에서 머물며 시를 쓰던 19세 소년 서정주는 그 당시 광주학생독립운동 주모자로 체포 됐다가 형사 미성년자란 이유로 석방 된 뒤 얼마 지나지 않는 시기였다.

스러져가는 암자를 도피처로 삼아 밤새 시를 적어 내려간 소년이 떠오른다.

암울한 조국, 잊지 못할 어머니의 자장가, 염불 외우다 잠든 노승의 그림자를 곁들인 미당의 시에서 비 내리는 봄의 문턱을 넘는다./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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