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의리(義理)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편집국 칼럼] 의리(義理)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03.16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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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끊임없는 남과의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 이것을 인간관계라 부른다.  

그 인간관계에서 ‘인간답다’는 말을 듣게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의리 있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배신자라는 멍에를 쓴 사람도 있다.

의리는 소설과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임팩트 있는 주제다.

역사에 드러난 의리있는 행동은 만인에게 지조의 표상이다.

춘추시대 말기 군주의 힘이 약해지면서 신진 기득권층이 부상하자 사회에는 하극상의 풍조가 만연했다.

당시 진(晉)나라는 조.한.위.지.범.중행씨 등 여섯 가문들이 세를 불려 실권을 차지하며 분할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지씨 가문의 지백이 가장 교만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자 다른 나라가 연합하여 지백을 죽였다. 특히

조씨의 조양자는 지백을 증오한 나머지 죽인 것도 모자라 해골에 옻칠을 하여 술그릇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처참하게 죽은 지백의 가신 가운데 예양이란 사람이 있었다.

예양은 처음에 범씨와 중행씨를 도왔으나 인정을 받지 못하자 지백에게 흘러간 인물이었다.

지백은 그를 알아보고 중용하여 큰 일을 맡겼다. 하지만 지백이 죽자 그 가신들도 하루아침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예양도 산속에 들어가 숨어 살 수 밖에 없었다. 처량한 신세가 된 예양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 뜻을 세운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내를 위해 화장을 한다고 했다. 지백은 나를 알아주었으니 내 그를 위해 죽음으로 보답하는 것이 내 혼백에 부끄럽지 않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후 예양은 성과 이름을 바꾸고 지백을 죽인 조양자의 궁궐에 들어가 변소를 청소하는 천민으로 위장하고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하루는 조양자가 변소에 가려다가 이상한 낌새를 포착하고 사병들로 하여금 변소를 조사하게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비수를 지니고 변소에 숨어있던 예양을 붙잡아왔다. 병사들은 그를 당장 죽이려했으나 조양자는 ‘의리있는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석방해 주었다.

하지만 예양은 그 뒤에도 복수의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뜨거운 숯을 삼켜 성대를 끊어 다른 사람 목소리로 변장하고, 온몸에 기름을 발라 나환자로 가장한 뒤 거리에서 구걸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예양의 얼굴을 그 아내도 몰라볼 정도였다.

마침내 조양자가 다리를 지나간다는 정보를 듣고 주변에서 습격을 노리고 있었으나 다리 앞에서 갑자기 말이 놀라 껑충 뛰어 오른 바람에 실패하고 시위 병사들에 의해 또다시 붙들려 나왔다.

조양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예양에게 물었다.

“그대는 처음에 범씨와 중행씨를 도왔는데 지백이 이들을 멸망시킬 때는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지백의 부하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지백이 죽고 없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집요하게 지백을 위해 복수하려하는가?”

예양이 답했다.

“신이 범씨와 중행씨를 도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평범한 인물로 대했기에 나 역시 평범한 인물로 그들에게 보답했을 뿐입니다. 허나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했으니 나도 그에게 크게 보답하려는 것일 뿐이오”

이에 조양자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었다.

“오호, 예양이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하려는 행위는 이미 명분이 충분히 섰도다. 하지만 나 역시 그대를 또다시 놓아줄 명분이 한계에 이르렀다. 죽음을 각오하라”
사병들이 둘러싸고 그를 죽이려하자 예양이 마지막이라며 조양자에게 간청했다.

“충신에게 절개를 위해 죽을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지난번 군이 신을 너그럽게 용서하자 천하 사람들이 모두 군을 너그럽다고 칭찬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신이 죽음을 당해야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청이 있습니다. 부디 군의 옷깃을 칼로 쳐서 원수를 갚고자하는 제 뜻을 이루게 해 주신다면 원한이 없겠습니다. 그렇게 할리 만무하겠지만 마음속의 바람을 청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사형수의 마지막 주문이었다.

“아니, 내 옷을 칼로 찔러 나를 복수하려는 뜻을 이루겠다고?”

그의 말에 탄복한 조양자는 즉시 옷을 벗어 예양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예양은 칼로 조양자의 옷 상단 심장 부위에 구멍을 낸 다음 “아, 이제 비로소 지백에게 보답하게 됐구나!”라고 외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기까지가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자객열전’의 이야기다.

상상하기 어려운 무모함과 어리석음이 섞여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남들이 다 자신을 외면할 때 자신을 알아주고 은혜를 베푼 지백을 위해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죽음으로 갚은 예양의 이야기는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춘추전국시대의 인간관계의 백미다. 조양자가 의리를 위해 죽는 예양을 위해 ‘내 옷에 복수하라’며 옷을 벗어준 행동은 그가  얼마나 의리를 높게 평가했는가를 말해준다.

그래서 사마천은 이 위대한 교훈에 대해 이렇게 주석을 달아놨다.

“뜻있는 인사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사마천은 2천 년 전에 물질과 권력에 흔들리는 세상을 위해 이렇게 절규하고 있었다.

“그대들이 의리를 알기나 하는가??”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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