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선택의 계절…“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편집국 칼럼] 선택의 계절…“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04.06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투표의 계절이 다가왔다.

이른바 ‘투표권자가 왕’인 짧은 봄날이 왔다.

이렇게 선거철이 다가오면 꼭 튀어나오는 단골 문구 하나가 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나온 말이다.

비슷한 버전으로 “정치적 무관심의 댓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악한 정치인에게 지배당할 수 있다”라는 말도 있다.

모두 현자의 지혜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심오한 해석이 붙여지곤 한다.

어쨌거나 인간은 정치에 무관심하며 살 수는 있어도 정치를 외면하고 살기는 불가능하다. 정치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아무리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친다 할지라도 자신과 그 주변은 정치로 얽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총선 투표율을 보면 4년 전 20대 58%, 19대 54%, 18대 46%에 불과했다. 10 명 중 겨우 5~6명만 투표했다는 통계다. 코로나19가 국민의 생각을 송두리째 지배하고 있는 이번 총선은 얼마나 투표할지 불안스럽기까지 하다.

많은 전통적 정치학자들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정의했지만 현대 대중사회 이론은 “인간은 반드시 정치적 동물이 아니다”라고 밝힌다.

학자들은 정치사회를 계층화하여 분류하는데 권력층, 권력추구층, 정치적계층, 비정치층으로 4분한다.

앞의 세 계층은 정치적 결정작용에 행동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간여하고 있는 반면, 비정치층은 정치과정 전반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반감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인간이 정치체제 안에서 살고 또 살아야 한다하더라도 반드시 정치 생활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상외로 서구 선진 민주주의가 정착된 여러 나라에서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수동적이라는 사실이 입증한다.

영국의 정치학자 린제이는 “정치는 결국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제2의적(第二義的)인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정치는 본질이 아니고 보다 중요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쉽게 풀이하자면 정치보다 더 중요한 영역이 있는 만큼 정치에의 관심을 최고 가치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의 궁극적 선(窮極善), 인간의 근원적 행복이라는 가치가 더 큰 영역일 수 있다. 정치 역시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립하는 것 아닌가.

어쩌면 정치적 무관심은 그 사회가 잘 되고 있다는 징조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곧 정치 권력이 개입하여 근본적으로 해결해 줘야 할 근본적 문제의 부재라는 뜻이며 사회의 정상성(正常性)의 지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상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실에서 정치적 무관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대표적인 것이 첫째, 전통적 정치무관심이다. 이것은 정치는 자기에게는 이질적인 것이며 타인의 것으로, 정치는 높은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처음부터 정치를 권력자·지배계층의 소유물이라는 판단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성층에서는 정치가 남성의 특권이라고 치부하고, 흙수저 층에서는 정치는 상류층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그들만의 잔치에 내가 왜 들러리?’라는 의식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둘째, 또 하나의 정치적 무관심의 종류는 신뢰형무관심이다.

이는 개인의 정치 참여가 없어도 정치적 결과가 만족하다고 여기는 부류들의 행동이다. 어떤 정치적 결정이 중대하다고 판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그 결과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 경우다.

자기가 참여하는 정치의 효율성에 대해 자신이 없을 경우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정치 참여로 이뤄지는 결정에 대한 깊은 신뢰는 오히려 개인의 정치참여를 불필요하게 만들 수 있다.

셋째, 다른 하나의 정치적 무관심 유형은 정치적 소외계층이다.

정치적 소외는 정치에 대한 무기력증이나 무의미감, 불만감, 위화감이 일고 정치 세계에서 자기만이 빠져 있다는 좌절감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한 표가 투표결과를 좌우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기권하게 된다. 개인의 정치 이상과 정치 현실간에 불일치가 나타나기 때문에 정치체계에 반감이 일고 멀어진다. 소외된 시민들은 사회가 권력자와 무력자와의 양극으로 분리된다고 믿는다. 나쁜 것으로 변질되어 나타나난 만큼 정치에 동참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가장 문제 되는 것은 정치적 소외계층의 불참이다.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적 보수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정권 교체나 정치개혁의 물결이 일어날 경우 개혁을 역행하는 기능을 한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을 경우에도 독재자는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을 때는 독재자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는 셈이 된다.

한국 사회가 가는 길에 나의 한 표는 어떤 역할을 할까.

오는 4/15 총선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현 정권의 중간 심판이라는 대명제가 걸려있다. 그것은 곧 ‘진보 사회로 가는가, 아니면 전통사회로 있기를 원하는 가’로 대별된다.

분단된 나라의 최대 염원인 한반도의 통일을 희망하는 정치집단에 투표할 것인가, 이를 가로막는 정치집단에 투표할 것인가.

통일된 나라에서 저 푸른 백두산 천지를 가슴에 품고 한반도를 굽어보고 싶지 않는가? 그렇다면 투표장에 나가 소중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백형모 편집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