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코로나19가 남겨준 선과 악
[편집국 칼럼] 코로나19가 남겨준 선과 악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05.11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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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봤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울타리는 가정이란다”

우리가 이토록 숫자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운 기억이 있을까?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뉴스 첫 머리의 숫자들...

7일 확진자는 4명 이었고 사망자는 1명이었다. 6일엔 확진자 2명, 사망자 1명이었다.

한 달 전인 4월 7일 국내 코로나 시계를 돌려본다. 이날 하루 확진자 47명이었다.

내친김에 두 달을 거슬러 3월 7일 코로나 시계를 돌려본다. 하루 확진자가 483명이 늘어났다.

참 무서운 숫자악령이다.

아, 이젠 더 이상 숫자를 가지고 거론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언제까지 숫자의 악몽에 짓눌려야 할지 모르는 세상, 참 가증스럽다.

어른들이 이럴진데 하물며 어린이들은 어떨까?

며칠 전 황금연휴기간에 제주도를 다녀간 사람이 20만 명을 넘었다고 보도됐다.

그동안 모든 것을 자제하고 외면해야했던, 창살없는 집콕으로부터 참았던 호흡을 한꺼번에 하려는 몸부림이었을 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간격이 좁아진 틈을 타 밖으로 향하려는 인간의 야수성이 나타난 탓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겉으론 꺼진듯이 보이지만 언제 어디서 다시 발화할지 모르는 바람 앞의 산불 화마처럼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숫자가 가정에 희망을 쏘았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대단한 고통과 선물을 동시에 안겨줬다.

고통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사람이 서로 가까이서 대화하거나 악수조차 할 수 없는 스킨십 부재 상황은 목줄을 매어놓은 애완견 처지나 다름없었다. 학교는 폐쇄돼 보고 싶은 선생님과 급우들을 볼 수 없고, 친구 결혼식장도 맘대로 가지 못하는 철저한 사회활동 통제가 이뤄졌다. 정부나 지자체, 노사간, 자영업자들까지 모두 지치고 목말라 코로나 압사 직전에 놓였다. 아(我)와 피아(彼我)를 가르는 장막의 벽이 이렇게 두려운 것인지 처음 실감했다.

그렇다면 그가 남긴 선물은 무엇일까?

질병본부는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자 모든 국민에게 바깥 사회생활을 자제토록 했다. 필요한 직장만 유지하고 ‘집으로’ 향하도록 했다. 심지어 친목 모임도 취소하고 저녁 식사마저도 가정에서 하도록 했다.

덕택에 가정에서는 모처럼 자녀들과 함께 김치찌개에다 저녁밥을 먹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어쩔 수 없이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고 TV를 함께 보는 시간이 늘었다. 자녀들에게 요즘 유행어를 물어볼 수도 있게 됐다. 잃어버린 아빠 얼굴의 주름살을 되찾을 수 있었고 엄마의 반찬 솜씨 타령을 할 수도 있었다. 아빠도 이렇게 일찍 집에 들어올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줬다.

가족과의 이런 24시간들은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다른 어느 곳보다 가정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참으로 고마운 시간의 선물들이다. 언제 우리가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가?

우리가 평상시에 스스로 못했던 가장 쉬운 일들, 가장 절실했던 과제들을 코로나는 짧은 시간에 익힐 수 있도록 했다.

이럴진데 박물관이나 영화관을 갈 때 자녀들의 손을 꼭 잡고 가는 것을 어찌 외면하겠는가.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을 밖에서 주워 다시 가정으로 담아오게 만든 코로나19에게 감사드릴 뿐이다.

뒤늦게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

“얘들아, 이번에 봤지? 세상이 아무리 험난해도 우리를 감싸줄 가장 든든한 울타리는 가족이란다”                    
/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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