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아들 두고 가면 누가 돌보나?...”
“불쌍한 아들 두고 가면 누가 돌보나?...”
  • 최현웅 기자
  • 승인 2020.05.18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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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면 장산2리 기노순 씨 ‘장한어버이 상’ 수상
선천적 장애 안고 태어난 두 아들 43년간 키워

 

“남의집살이하다가 열여섯에 둘려서(속아서) 시집을 갔어. 시집와서 본께 홀어머니에 남편이 외아들인디 어찌나 가난했던지 울고만 싶더랑께. 속 없었응께 버티고 살아왔제.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믄 못살 거구만 암만”

제48회 어버이날 표창패 수여식에서 ‘장한어버이상’을 수상한 황룡면 장산2리 기노순(68)씨는 지나온 세월을 어찌 사셨냐는 기자의 질문에 평생 가난과 싸워온 힘겨운 나날을 담담히 얘기했다.

“젊었을 땐 홀어머니 모시느라 허리가 다 빠졌지. 술 좋아하는 얘 아빠 건사하느라 늙는지도 몰랐어. 첫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가 이상해 걸을 때가 넘었는데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 하는 거라. 병원에도 몇 번 데려가고 했는데 가망이 없다는 거야. 그런데 연이어 나온 둘째마저 그랬으니 내 속이 어땠겄어?”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장애를 앓고 있던 두 아들은 그렇게 43년(장남43, 차남 42세) 동안 기노순 씨의 아픈 손가락이 됐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던지 한 때는 나쁜 생각도 들었어. 그러다가도 저 불쌍한 얘들 두고 가면 누가 돌보나 생각하면 가슴이 막히더라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남편이 또 아픈 거야. 얘 아빠도 평생 남의 집 논밭 부쳐 먹고 사느라 고생만 하다 갔어” 기노순 씨는 그나마 남편이 생존해 있을 때는 얼마간의 수입이 있었지만, 남편이 앓고 난 뒤엔 집안을 꾸리는 일은 고스란히 기노순 씨의 몫이었다.

어릴 적 남의 집으로 일하러 다니느라 공부할 기회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집안을 꾸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8년여 전 손짓·발짓을 써가며 악착같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기노순 씨는 그러나 한 달이면 채 100만 원이 되지 않는 수입에도 바로 이 수입원으로 인해 기초수급지원 대상자에도 선정되지 못했다.

그나마 최근엔 요양보호 돌봄 가구도 2가구에서 1가구로 줄어 얼마 안 되는 수입마저 반 토막 나 한 달이면 쥐는 월급이 채 50만 원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게다가 몸이 불편한 두 아들 몫으로 나오는 장애연금도 부실해 제대로 돌보기도 빠듯한 실정이라고.

뒤늦게 낳은 막내딸은 장성에서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독립해 광주의 한 방직공장에 취업해 그곳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광주의 한 개인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기노순 씨에겐 이 막내딸도 마냥 아픈 손가락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린 나이에 객지에 나가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 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와 다 내가 못나서 그래….” 말을 잇지 못하는 기노순 씨의 팔뚝이 심하게 굽어있었다. 젊었을 때 닥치는 대로 일하다 보니 어느 순간 온몸이 망가져 있더란다. 그땐 병원이고 뭐고 엄두도 못 냈다고.

기노순 씨는 바람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돈이 없어 챙겨주지 못한 막내딸 시집 잘 가는 거 보는 거와 장애를 앓고 있는 두 아들이 제힘으로 자립해 살 수 있으면 더 이상의 바람은 없다고. 덧붙여 두 아들 굶기지 않도록 일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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