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타인의 고통이 그리도 즐거운가?
[편집국 칼럼] 타인의 고통이 그리도 즐거운가?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07.27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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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없다.

슬픔 가운데 가장 강력한 맹독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타인의 죽음에 서러워 하기보다 ‘보이지 않게’ 즐기며 사는 것 같다. 타인의 고통에 우리의 지분이 어느 정도는 있다는 것을 느끼는 공동운명체가 아니라 쾌감을 느끼는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다.

최근 한국 사회를 진단한 결과다.

한국은 지금 타인의 고통을 볼거리나 즐길거리로 소비하면서 자신들의 정쟁(政爭)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타인의 고통>을 쓴 저자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한다.

“내 확신에 따르면 사람들은 현실의 불행과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적지 않는 즐거움을 느낀다.”

지금 한국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 표현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정략의 도구로 삼는 동물들 같다. 상대의 고통을 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고 난도질하며 자르고 원색으로 색칠해 나간다. 내 생각 이외의 모든 다른 것에 갖은 이유를 만들어 역적으로 몰거나 분탕질 해댄다.

그놈의 좌파와 우파라는 당파 싸움은 오백여년 전 임진왜란을 당했던 때나 지금이나 한치도 다르지 않다. 왜적이 우리에게 들이대기 위해 칼을 갈고 있는데도 안방에서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당장 내일, 왜구에게 마누라를 빼앗기고, 자식들이 칼 맞아 죽더라도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패 싸움에 안달이다. 

이 나라 역사 이래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기를 반복하던 사람들의 습성이 어디 갈까? 무슨 놈의 권력이 그렇게도 탐나는지 서로 끌어 내리고 죽이기에 혈안이다.

하물며 망자의 시신을 앞에 놓고 자신들과 특별히 관계가 없는 장례 일정마저도 5일을 3일로 하라고 수십만 명이 청와대에 청원을 하는 몰인정한 나라가 돼 버렸다.

몇 년 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망자와 막역한 동지임을 과시하며 한국의 미래를 운운하던 안철수는 ‘나는 그 사람에게 조문하러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참으로 뻔뻔한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돼 묻는다. ‘누가 당신에게 조문하라고 합디까?’ 그러면서 한마디 던진다. ‘당신 같은 사람을 대통령 시켜줬더라면 얼마나 많은 배신과 악역을 자행했을까’라고…

그런 사람들에게 권력이 주어졌다면 그들은 어땠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이래서 ‘이 나라를 떠나 이민 간다’는 소리가 나왔을 것 같다.

오천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 대한민국이여!

그래,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좀 더 인간답게 만들까?

사람들이 서로 조금 냉정해 질 수 없을까.

우리는 이 한 단어를 생각해야 한다.

이타심(利他心)이다. 사전 풀이 그대로 ‘남을 위하거나 이롭게 하는 마음’이다. 반대말은 이기심(利己心)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거나 남의 이해는 돌아보지 않는 마음이다. 글자 한자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쓴 서울대 배철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이타심이 발현 될 때 인간은 비로소 도약했다. 이타심이라는 그 아름다운 유전자를 발견하고 키워온 노력의 역사가 위대한 인간으로 가는 여정이다. 현생 인류가 탄생했던 약 1만년의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왔다.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발견하고 의례를 하고 벽화를 그리는 등의 모든 혁신은 인간의 이타심이 발현되어 나타난 것들이었다. 인류의 위대함은 남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기적인 전략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그 마음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꼭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카이스트에 676억 원을 기부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우리나라 최고 기부액이다. 80대 여성사업가가 평생을 모은 재산을 과학연구기금으로 써 달라며 조건없이 기부한 것이다. “국내 최초로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백성이 평안하고 배불리 먹을 것을 염려했던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이타심의 발현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미래가 있는 나라라는 것을 확인하는 날이다.                                      /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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