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잃어버린 환난상휼 “공무원이 봉입니까?”
[편집국 칼럼] 잃어버린 환난상휼 “공무원이 봉입니까?”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08.24 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호랑이에 물려 아들을 잃은 사람은 호랑이라고 답했고, 화마에 집안이 잿더미로 변한 사람은 불이라고 했으며, 홍수에 삶의 터전을 송두리 째 잃은 사람은 물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답했다.

모두 정답이다.

황톳빛 물줄기가 휘감기는 대홍수 광경을 잠시라도 지켜본 사람은 물이 얼마나 살 떨리는 위압감을 주는 것인지 실감케 한다.

2주 전 장성을 물바다로 만든 폭우도 마찬가지였다. 5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휩쓸고 간 지난 7~9일 이후 장성 지역은 폭탄을 맞은 뒤끝 같았다. 가옥과 거리는 물에 잠기고 도로는 산사태로 뒤범벅이 됐다. 논밭이 호수로 변하고 비닐하우스에 물이 잠겨 성한 작물이 없었다.

이런 광경을 바라본 장성 군민들은 가만이 있지 않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을 가다듬고 복구의 팔을 걷어부쳤다.

비가 멈추던 8월 10일부터 2주일간은 거의 모든 주민과 사회단체, 공무원들이 피해복구에 매달렸다. 사회단체에서는 자발적으로 희망 지역에 가서 부족한 복구 일손을 거들었고, 상무대에서도 혈기 넘치는 군민들이 지역의 어려움을 보고 가만이 있지 않았다. 황금연휴라 할 수 있는 15~17일에는 군청 6급 이상 공무원들이 현장에 동원돼 진땀을 쏟았다.

안쓰럽고 짠한 마음에 가재도구 하나라도 더 씻어서 건져드리고, 쓰레기 더미 하나라도 빨리 치워드리고 싶은 마음들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양심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불미스런 일들이 불거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장성군청에는 각 가정과 골목에서 ”이곳에 물이 넘친다. 빨리 와서 대책을 세워라“”는 항의성 전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워낙 집중된 호우라 가옥과 도로가 잇따라 무너지는 위험스러운 곳이 많아 그런 작은 안전사고에는 파견될 인력이 없었다. 급작스럽게 몰아친 재난 앞에서 공무원들도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도 민원인들은 “너희들이 공무원이냐? 어째서 와보라는데 사람 없다는 타령만하느냐”며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해당 공무원은 푸념 섞인 한숨을 지었다.

“우리가 크고 작은 모든 재앙을 막을 위대한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뿐만 아니었다.

한 피해복구 현장에서는 물에 잠긴 하우스를 정리, 복구하는 과정에서 버려야 할 가재도구와 물품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 앞에서 기진맥진해야 했다. 수년 동안 폐품으로 한 켠에 모아놨던 물건들까지 모조리 군청 수거차량에 들이대는 것이었다.

모처럼 공짜로 쓰레기 차량을 제공받고, 공무원 10여 명이 현장에 달라붙어 있으니 ‘기회는 이때다’ 싶었을까? 때문에 불과 2~3시간 예상했던 복구작업은 하루 종일 해도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현장에 나갔던 공무원은 말했다.

“아, 해도 너무합니다…”

또 군부대가 투입된 한 가정에서는 봉사 첫날 할 수 있는 대로 봉사를 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이틑날 또다시 봉사를 신청, 가보니까 어제 그 집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집만을 상대로 아예 대청소까지 욕심을 부리는 눈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복구 현장에 투입된 장병이 투정했다.

“엄니, 엄니 집만 난리가 난 것이 아니고요, 밥도 제대로 못해 먹을 정도로 엉망인 집도 수두룩하다고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환난상휼(患難相恤)이라는 위대한 교훈이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해 향약(鄕約)이라는 네 가지 자치규범을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환난상휼이다. 어려움 앞에 하나 되어 헤쳐나가고 나눔을 실천하는 공동체 정신이다.

화재나 수재 같은 천재지변이나 병에 걸렸을 때, 도적을 만났을 때도 이웃끼리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길이 바로 그 길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 위대한 공동체 정신이 ‘나만 먼저 살고 보자’는 이기주의로 검게 채색되고 있다.

이제는 다 같이 어울리는 녹색의 수채화를 꿈꿀 차례다. 그러려면 그 그림의 밑바탕에 서로를 헤아려 주는 양보심으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편집국장 백형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