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전라도…배신의 역사를 기억하라
[편집국 칼럼] 전라도…배신의 역사를 기억하라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08.31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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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역사는 참으로 깊고 오래됐다.

원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역사가 존재하는 한 배신의 역사도 상존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배신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먹잇감을 둘러싼 배신, 암컷을 둘러싼 배신을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본다.

역사의 순환 물줄기를 끊고 거꾸로 흐르게 만드는 반전은 배신으로부터 움텄다. '성공하면 역성(易姓)혁명이고, 실패하면 쿠데타'로 끝나는 정치적 배신도 그 중 하나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이 그랬고, 조선의 멸망이 그랬다. 배신으로 시작한 정권은 그렇게 배신으로 종말을 거뒀다.

배신 중의 가장 큰 배신, 즉 나라까지 팔아먹는 배신은 바로 해방 직전까지 우리를 슬프게 만들었다. 자신의 권세와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일제와 내통하던 무리들에 의해 조선이 무너져갔다.

바람같은 권력을 붙잡기 위해, 눈앞의 사리사욕을 위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허물어져 가는 조선을 걷어차고 일제의 앞장이가 되어 제국의 칼을 찬 친일파들이 있었다. 그 덕분에 일제는 춤을 추며 조선을 야금야금 먹을 수 있었다.

광복일이 벌써 보름전이다.

이번 광복절은 코로나 악몽에다 수해까지 겹쳐 미처 뜨거운 가슴으로 맞이하지 못했다.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여겨 내던진 선열들의 흔적을 뒤적여볼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사람들 때문에 조국을 잃었으며 어떤 분들의 피와 함성으로 조국을 건졌는지 너무도 잘 안다.

조국을 잃은 데는 정치권의 무능을 비롯, 관료의 부패, 제도의 미비, 퇴폐 사회, 황금 만능주의 등등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다.

그 가장 깊은 바닥에는 배신이 중요한 몫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배신자는 결코 배신행위로 보지 않고, 또 스스로를 배신자라 부르지 않는다. 그 추종세력이나 부류들도 그렇긴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에서의 배신 행적은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가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일어났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장자가 아닌 셋째 아들 이건희에게 회장을 물려줬다. 그 이유는 장남 이맹희와 차남 이창희는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비리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발하다가 아버지의 눈밖에 났기 때문이다. 최고 재벌의 아들이 회장인 아버지를 대통령이란 권력에 고발하면서 빚어진 이 배신 행위들은 한편의 소설이었다.

영원히 탄탄대로만을 걸을 것 같았던 삼성그룹은 내부로부터 가장 큰 적을 만난다.

검사 출신으로 삼성구조본부 재무팀과 법무팀에서 근무하던 김용철 변호사가 2007년 삼성비자금을 폭로하면서 부터다.

들끓는 여론의 지탄에 비자금을 수사하던 검찰은 이건희 회장 주변에서 4조5천억 규모의 차명계좌를 발견하고 엄청난 조세포탈 혐의가 있음을 밝혀냈다. 결국 이건희는 성명을 발표하고 회장 자리를 내려놨다.

문제의 중심에는 김용철 변호사란 인물이 있었으며 그 사람의 태생지가 전라도라는 딱지가 붙어있었다.

당시 이같은 사건을 두고 세간에서는 두 가지 시선이 부딪혔다.

비록 자신이 근무해온 곳이지만 비리로 가득찬 삼성가를 폭로해 정의의 심판대에 서게 했다는 박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곳에서 녹봉을 받은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업무과 관련된 내용을 고발할 수 있느냐는 비인간적 지탄이었다. 그러면서 붙여진 꼬리표가 ‘전라도 인간들은...’이란 표식이었다. 어떻게 믿고 맡기겠느냐는 푸념도 뒤따랐다. 전라도가 아닌 저 쪽에서 바라본 시각에서는 ‘비열하기 짝이 없다’는 냉소로 가득했다.

참으로 씁쓸한 평판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이 전라도의 꼬리표를 떼기가 어렵다.

자신의 욕망과 이기주의를 덮기 위해 정의라는 말로 위장한 배신의 종말은 그 후유증으로 여러 사람을 아프고 쓰리게 만든다. 그리고 길게 간다.   

정의와 배신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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