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라!"
[편집국 칼럼]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라!"
  • 장성투데이
  • 승인 2020.09.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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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욕'...능욕을 참던 한신 장군의 기개는 없는가

무인들의 용쟁호투 이야기 하려면 중국 전한시대 한신 장군(?~기원전 196년)의 드라마를 빼놓을 수 없다.

항우와 유방이 쟁패를 다툴 때 유방의 부하로 신출귀몰한 계책을 세우며 수많은 전투에 참가해 마침내 최강의 항우를 물리치고 유방이 패권을 잡도록 하여 천하 평정의 기틀을 다진 영웅이다.

유방을 도와 통일의 대업을 이룬 대표적인 3인의 영웅 ‘서한삼걸’의 명장 소하 마저도 한신을 평가하여 “백만 대군을 통솔하여 싸웠다하면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하는 차원에서 나는 한신만 못하다”고 인정했을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다.

한신은 원래 평민 출신으로 가난하고 품행마저 좋지않아 장사도 못하고, 관리로 천거되지도 못했다. 항상 남의 집에 빌붙어 살아 남들이 싫어했다. 회음현이라는 곳에서 정장(亭長:우리나라의 면장) 집에서 몇 달간 기식했는데 정장의 아내가 그를 미워해 하루는 아침 일찍 밥을 먹어버리고 나서 한신이 찾아오자 남는 밥을 없애버렸다. 한신은 그 속샘을 알아 차리고 분노를 참으며 떠났다.

한번은 성 아래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빨래하는 여자가 밥도 못 먹은 것 같은 한신의 행색을 보고 밥을 주자 “훗날 부인에게 반드시 보답하겠소”라고 약속했다. 그러자 부인은 “사내 자식이 스스로 밥도 못 먹고 다니기에 꼴상이 불쌍해서 밥을 줬을 뿐인데 어찌 보답을 바랄꼬? 자고로 대장부라면 마땅히 뜻을 세워야지 다시는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며 충고를 주었다.

이 이야기는 ‘표모반신(漂母飯信)’ 즉 ‘빨래하는 아낙이 한신에게 밥을 주었다’는 고사성어로 탄생하게 된다. 한신은 자신에게 은혜를 주었던 사람에게 반드시 보답을 했는데 훗날 빨래하던 아낙을 찾아 후하게 사례했다.

또 한번은 성 안의 건달들이 칼을 차고 다니는 한신을 비웃으며 “죽음을 각오할 수 있으면 그 칼로 나를 찔러라. 못하겠다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와라”라고 모욕을 주었다. 한신은 그를 ‘한번 보고’는 허리를 굽혀 그 가랑이 사이를 기어 나왔다. 그러자 성 안팎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비웃으며 겁쟁이라 여겼다.

이 이야기는 훗날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는 유명한 고사성어로 남게 된다.

난세에 전국을 떠돌던 한신은 항우 휘하에 들어가 전투에 참여하고 자주 간언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같은 충정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천하를 양분하겠다던 항우가 과욕을 부려 유방을 한왕으로 봉해 낙후된 서촉 지방으로 보내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유방의 휘하에 새롭게 둥지를 튼다.

여기에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차에 법을 어겨 참형에 처하게 되는데 13명이 처형되고 마지막 자신의 차례가 됐는데 현령인 하후영을 보고 “전하께선 천하를 가지고 싶지 않는 것입니까? 어찌 저 같은 장사를 베려 하십니까?”라고 당돌하게 말하자 하후영이 그 말을 특이하게 여기고 풀어주며 유방에게 천거해 벼슬을 준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신임을 받은 한신은 곧 유방에게 적장인 항우의 약점을 낮낮이 들춰 필승의 계책을 전수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일등공신이 되고 이 공로로 훗날 고향 땅인 초나라에서 왕이 된다.

자신의 고난과 역경 시절을 잊지 않았던 한신은 과거 초나라에서 밥을 얻어먹은 빨래하는 아낙을 찾아가 천금을 주었고, 회음현의 정장에게는 밥을 주다 말았다며 돈 100냥을 주었다. 그리고 자기를 가랑이 밑으로 기어 모욕을 준 건달에게도 불러 중위로 삼은 뒤, 여러 장상들에게 말했다.

“이자가 나를 욕보였을 당시에 내가 어찌 죽일 수 없었겠는가? 죽여도 이름을 낼 수 없어 지금 성공을 이루기까지 참은 것이다”

한신처럼 인고의 나날을 참아내며 10년, 20년 뒤에 인생 대반전을 꿈꾸는 야망과 패기가 지금 이 시대엔 통하지 않는 것인가?

잠시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막말을 토해내고, 상대의 허점을 공격하며 뒤통수를 치는 행위가 극에 달하고 있다. 오직 ‘나만 정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세태를 예견하듯 사마천은 <사기>에 한신 이야기를 담으면서 이렇게 상황을 서술했다.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라’는 사람을 한번 훑어보고(째려보고) 기어이 가랑이로 기어갔다”고. 미래를 기약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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