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만 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여행하라!”
[편집국 칼럼] “만 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여행하라!”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09.21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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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인생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재미있고 감미로운 선물이다. 여행은 그 단어만 들어도 흥분감을 준다. 다른 세계를 만나 직접 경험함으로써 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든다.

그래서 선인들은 여행을 ‘글자 없는 책’이라는 뜻으로 ‘무자지서(無字之書)’라 불렀다

모든 여행은 기존의 나로부터 탈출을 전제로 한다. 그와 동시에 다른 문화,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가 지금까지와 다른 세상을 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미처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고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선인들은 인생을 살찌우는 방법으로 독서와 여행을 권했다.

청나라 학자 고염무(1613~1682)는 “독만권서(讀萬卷書) 만 권의 책을 읽고, 행만리로(行萬里路) 만 리를 여행하라”고 했다.

오늘날처럼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먼 과거에도 부모들은 경험과 체험을 지혜롭게 전수하는 최고의 교육으로 여행을 권장했다.

역사상 가장 값진 여행을 한 사람은 사마천(B.C. 145(?) ~ B.C. 86(?))이라 할 수 있다.

사마천은 스무 살 무렵, 역사학자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2~3년 동안 천하를 함께 여행 했다. 그때 중국 곳곳의 역사 현장의 견문과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훗날 절대 역사서 <사기(史記)>를 집필하여 그 책의 가치를 다른 역사서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사기(史記)>가 오늘날에도 전세계인의 100대 필독서, 50대 필독서에 반드시 상위에 꼽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사마천의 아버지는 여행을 하면서 “어느 지역에 가든 먼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라. 책에 쓰여 있지 않은 살아 있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법이다”라고 당부했다.

사마천은 역사가 집안에서 태어나 역사가가 되기 위한 체계적인 훈련을 실전가인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역사가로서의 자질을 도야하기 위해 여행을 통해서 살피고(觀), 연구하고(探), 찾고(訪), 묻는(問) 여러 방법을 잘 활용했다. 그가 남긴 이 방법은 지금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즉 ‘관’이란 산천, 강하, 호수, 바다, 지형 형세를 실지로 관찰하는 것이며, ‘탐’은 각지의 경제산물, 풍속민정, 사회 각층의 생활을 연구하는 것, ‘방’은 고적 유물을 찾는 것, ‘문’은 각지의 유로, 유생, 과거 유적지의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청해 구두 사료, 민간가요 등을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심오한 여행 결과 사마천은 방대한 역사서를 저술하면서 기존에 왕을 중심으로 기록하던 체제를 타파하고 서민과 중류층, 왕과 귀족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역사서를 세상에 펴냈다.

“역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서는 왕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아야 한다. 기존의 역사서는 왕들의 이야기만을 엮어 놓았다. 역사가란 이름 없이 사라져 간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왕조의 기록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 사마천의 생각이었다.

새로운 역사서 편찬 의지를 밝힌 사마천은 그러한 행동이 황제의 노여움을 살 것을 예견하여 그의 저서를 아무도 모르게 복사본을 만들어 한 권을 세상과 다른 깊은 곳에 숨겨놓아 만일의 사태가 난 뒤에도 전해질 수 있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렇다면 보통의 서민들이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여행에서 얻게 되는 것의 하나는 ‘낯선 곳에서의 적응력을 높이는 훈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행은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미지의 곳에 부딪히기 때문에 무엇이든 두드려 얻어야 한다. 무서워하기만 한다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또 하나의 교훈은 ‘사람 사는 건 누구나 똑 같구나’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점이다. 막연한 환상을 깨고 미국이나 아프리카나 그들이 먹는 것, 입는 것, 직장 생활하는 것, 고달픈 것 등 대부분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코로나19 악령이 세계 여행에 종말을 고하고 있다. 여행산업의 낙후도 걱정이지만 여행에서 배울 수 있는 역사의 지혜와 경험이 퇴보하면서 삶의 질도 후퇴할까 걱정된다. 매년 한두번 씩 외국을 다녀왔던 필자도 안타까움이 크다.

코로나가 극복되어 반전의 시대가 오리라 기대하며 그때까지 실제 여행 대신 다른 방법으로 내공을 다질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이 비대면 시대에 온라인으로 이뤄지니 시대에 적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때를 기다리며 중국 명나라 말기의 세계적인 여행가로 ‘서해객유기’를 남긴 서하객(徐霞客 1587~1641)이 남긴 여행 찬미가를 되새겨본다.

“사나이가 뜻을 천하에 두어야지, 우리에 갇힌 닭과 수레를 끄는 말처럼, 집이나 뜰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             /편집국장 백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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