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왜, 이건희 회장의 가짜 편지에 가슴 찡하는가.
[편집국 칼럼] 왜, 이건희 회장의 가짜 편지에 가슴 찡하는가.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11.02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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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빈손 인생이다.

재계의 큰 별로 불리던 이건희 회장이 마침내 별세했다.

약 18조 원에 달하는 삼성그룹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빈손으로 떠났다.

그가 입은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 많은 돈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그렇다. 그분도 눈 감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것인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세상 이치인데...

그렇게 간 이건희 회장이 남겼다는 유언장이 온라인상에 널리 퍼지고 있다. 분명히 가짜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사람이 그렇게 쓸 수 없다. 아주 건강한 상태에서 쓴 필력이 돋보인다. 유족들도 가짜라고 밝혔다. 누군가 이건희 회장의 이름을 빌어 쓴 유언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글이 세간에 퍼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은 가진 자의 글이 아니라 떠날 사람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에 찡한 감동을 준다. 남아있는 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에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앞으로 남아있는 많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교훈을 주고 있다.

‘나의 편지를 읽는 아직은 건강한 그대들에게’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글을 곱씹어 보자.

편지는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검진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 괴로운 일이 있어서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며, 양보하고 베푸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 그리 한 번 살아보라”고 시작한다.

먼저 양보하고 베푸는 삶을 강조하고 있다. 베품의 삶은 가진 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삶의 양식이다. 다만 실천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작은 것도 나누는 삶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당부하고 있다.

편지에서는 또 “돈과 권력이 있다 해도 교만하지 말고 부유하진 못해도 사소한 것에 만족을 알며 피로하지 않아도 휴식할 줄 알며, 아무리 바빠도 움직이고 또 운동하라”고 했다.

덧붙여 “3,000원 짜리 옷 가치는 영수증이 증명해주고 3,000만원 짜리 자가용은 수표가 증명해주고, 5억짜리 집은 집문서가 증명해주는데 사람의 가치는 무엇이 증명해주는지 알고 있느냐”며 “바로 건강한 몸이다. 건강에 들인 돈은 계산기로 두드리지 말라”고 했다.

편지에는 “건강할 때 있는 돈은 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아픈 뒤 그대가 쥐고 있는 돈은 그저 유산일 뿐”이라며 “세상에 당신을 위해 차를 몰아줄 기사는 얼마든지 있고,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돈을 벌어줄 사람도 역시 있을 것이오! 하지만 당신의 몸을 대신해 아파줄 사람은 결코 없을 테니. 물건을 잃어버리면 다시 찾거나 사면 되지만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은 하나뿐인 생명이라오. 내가 여기까지 와 보니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요?”라고 쓰여 있었다.

구구절절 귀에 와닿는 충고다.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건강이다. 건강을 잃고 보니 아무것도 없더라는 충고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고언이다. 당장이라도 운동화 끈을 고쳐매고 나서길 권한다.

편지에서는 돈의 가치에 대해서도 한 마디 던진다.

글에서는 “내가 여기까지 와보니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요? 무한한 재물의 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어요. 내가 죽으면 나의 호화로운 별장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게 되겠지, 내가 죽으면 나의 고급 진 차 열쇠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겠지요. 내가 한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 것들… 돈, 권력, 직위가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읊고 있다.

편지는 “전반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던 나는, 후반전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로 마무리 짓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그대들에게 전할 수 있음에 따뜻한 기쁨을 느낍니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며 살아가기를…힘없는 나는 이제 마음으로 그대들의 행운을 빌어줄 뿐이요!”라고 매듭을 짓는다.

주렁주렁 달린 링겔 주사에 둘러싸여 병상에 비스듬히 누워 꺼져가는 생명을 바라보는 듯하다.

“삶이란 한 줄기 바람이 불어 오는 것, 죽음이란 고요한 연못에 달이 잠기는 것”이라는 성현의 말을 꺼내 본다.

가을이다.

많이 사랑하자.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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