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장성에 뿌리를 둔 김종인에게 음수사원을 청한다
[편집국 칼럼]장성에 뿌리를 둔 김종인에게 음수사원을 청한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11.09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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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의 자긍심을 일컫는 용어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가장 널리 알려진 용어는 문불여장성(文不如女長城)이란 말이다.

그 다음이 삼성삼평(三城三平)이며 다른 하나는 광라장창(光羅長昌)이란 말이다.

文不如女長城은 노사 기정진(1798~1879) 선생이 청나라 사신들을 맞아 학문의 높은 경지를 보여줬다는 일화를 바탕으로 전해지는 장안만목(長安萬目)이 불여장성일목(不如長城一目), 즉 ‘서울 만 개의 눈이 장성 한 사람의 눈보다 못하다’는 비유에서 유래한다. 그 뒤에는 흥선대원군이 호남팔불여(湖南八不如)를 말하면서 문불여장성(文不如女長城), ‘글로는 장성을 따르지 못한다’는 뜻으로 표현하면서 널리 알려진다.

三城三平은 일제강점기에 호남 땅에 들어온 일본군이 지역민의 거센 항일운동에 부딪혀 쉽게 발을 못 붙인 곳이 있었는데 바로 장성, 곡성, 보성 그리고 함평, 남평, 창평의 6곳을 통칭하여 부른 이름으로 알려진다. 민족적 기개와 자존의식, 외세 저항이 강한 강골 동네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光羅長昌은 광주, 나주, 장성, 창평을 이야기하는 말인데 호남에서 선비가 많고 학문이 성한 곳의 대명사로 불리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경상도에서 안동 문장을 으뜸으로 꼽았다면 호남에서는 장성의 문장과 학문을 으뜸으로 꼽았다.

이처럼 장성의 기질을 밝혀주는 데는 두 분의 중요한 인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필암서원의 주인공인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과 고산서원의 노사 기정진(1798~1879)이다.

그런데 두 분이 모두 전북 순창군과 깊이 연결돼있다.

1543년 홍문관 박사 겸 당시 세자였던 인종의 스승이 된 위치까지 올라간 하서는 1548년 처가 댁이 있는 순창 점암촌에 이거하여 초당을 짓고 2년 남짓 머물며 훈몽재(訓蒙齋)라는 이름이며 후학들에게 강학을 했다. 이 시기에 송강 정철이 이곳에서 하서에게 대학을 배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서는 그러다가 부친상을 당해 곧바로 장성으로 돌아간다.

노사는 순창에서 태어났으나 양친을 여읜 18세 무렵에 선대의 고향인 장성으로 이사와 여러 차례 집을 옮기며 살았다. 그러다가 80세에 진원면 고산리에 이주하여 담대헌(澹對軒)이라는 정사를 짓고 문인들과 교우하다가 82세로 생을 마친다.

오늘날 교통이 발달해 장성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있는 순창은 과거사는 물론, 현대사에서도 장성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장성에서 백양사를 넘어 전북 순창군 복흥면 소재지를 지나 담양 가마골로 가는 길에 답동리에 들어서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무심한 산 중턱에 우람한 건물이 나타난다. 바로 가인 김병로 선생을 기리는 대법원 연수원 건물이다. 이 곳에서 개천을 따라 마을 하나를 지나면 둔전리라는 곳에 훈몽재가 있다.

이 유적의 주인공이 바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佳人) 김병로(金炳魯 1887~ 1964) 선생이다.

하서의 후손들은 인촌 김성수(金性洙) 선생의 가계와 직결이 돼 있다. 하서의 5대손 때부터 김성수·김연수 가문과 갈라진다. 인촌은 가인 김병로 선생의 할아버지뻘이 된다. 가인의 둘째 아들에게서 김종인이 태어난다. 즉 가인의 손자가 지금의 김종인(金鍾仁)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할아버지인 가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김종인이 네 살 때,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부친이 질병으로 급사하자 김종인은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라게 된다. 그에겐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김종인은 가인이 정치인으로 활동할 때 비서로 일하며 정치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김종인 대표는 현대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의료보험제도를 비롯한 경제민주화 등의 정책을 도입하면서 대통령의 신뢰를 얻었고, 1981년 전두환 정권 때 국보위에 참여한 뒤 11~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노태우 정권 때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했고 김영삼 정권 때 14대 국회의원, 노무현 정권 때 17대 국회의원을 했다.

그런 김종인이 호남의 어깨를 두드리기 위해 야당 대표로 연거푸 광주와 전남을 찾고 있다. 10여 명의 국회의원을 대동하고 시군 자치단체장들과 머리를 맞댔다.

가문의 시원인 호남을 잊지 않고 깊은 관심을 표현하는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문장과 의기의 장성에 뿌리를 둔 하서의 후손이란 것을 잊지 말고 현안을 챙겨 주길 바란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라’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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