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장막을 거둬라...그래야 장성이 보인다!
[편집국 칼럼] 장막을 거둬라...그래야 장성이 보인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11.23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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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왜 ‘차이나(china)’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천하통일국가였던 진(秦)나라의 중국식 발음인 친(Chin)을 본 딴 이름이기 때문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2200여년 전,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중국은 없고 유럽처럼 잘게 쪼개졌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인들 가슴에는 진나라에 대한 남다른 숭배정신과 자존심이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진나라는 기원전 900년 경부터 기원전 206년까지 약 700년 동안 존속한, 중국사에서 가장 긴 제국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원전 221년에는 진 시황제에 의해 어지러웠던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 중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첫 통일국가가 된다.

그 때 진나라가 봉건 영토를 평정하고 다스리기 위해 도입한 군현제도는 중국을 비롯, 아시아 여러 나라가 지금까지도 그 제도를 본받아 국가운영의 기본 틀로 운용하고 있다.

천하를 통일한 시황제는 더이상 제왕이라는 칭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새 이름을 짓도록 했는데 바로 황제란 명칭이다. 그 명칭은 중국 대륙의 통치자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진나라 때부터 1912년 청나라가 망하기까지 하늘 아래 가장 지엄한 존재로 불리우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도자의 칭호였다.

하지만 39세에 시황제에 올라 50세에 사망하기까지 11년 동안 통치했던 진나라도 그의 사후에 어리석은 후계자에 의해 쇠락하기 시작, 기원전 206년에 초패왕 항우에게 멸망하는 비극을 맞는다.

그러면 진나라는 어떻게 천하를 통일하고 초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했을까?

군웅이 할거하던 봉건시대에 진시황은 진의 제36대 군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가장 짧은 시간에 연, 조, 위, 제, 한, 초 등 6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천하통일을 이루어 냈다.

진나라는 그때까지 봉건제를 유지하던 나라의 형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식 통치를 위해 군현제를 실시한다. 또 전국 각지에서 진의 수도로 직통하는 치도(馳道)를 놓고 수도권에서 천리 이내는 질풍노도처럼 닿을 수 있는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직도(直道)를 놓도록 했다. 그리고 각종 도량형과 숫자를 통일하여 체계를 세우고 명령이 먹히도록 했다. 심지어는 마차의 수레바퀴 두께도 규제하여 주요 도로에 같은 규격의 마차바퀴가 통과하여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했다. 요즘으로 본다면 철도 레일을 규격화하여 파인 홈으로 마차를 달리도록 한 것이다.

진 시황제가 이렇게 파격적인 개혁정책을 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 배경은 ‘국가 경영에 다양한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진나라가 등용했던 승상 25명 가운데 17명이 외국 출신이고 7명은 국적불명, 오직 한 사람만이 진나라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통일을 이룩하기 전, 진시황은 자신에게 복종하고 달콤한 말만 하는 관료들만 가까이 한 것이 아니고 정적(政敵)과 능력 있는 지식인 또한 서슴없이 국정운영에 등용시켰다.

그 예로 진나라의 국정 사업인 운하 건설에 다양한 인재를 구성해 간첩 확정 판결을 받았던 한(韓)나라의 첩자인 정국(鄭國)을 모셔와 운하 건설을 맡겼다. 한나라에서 검증받은 수로 개척자였던 그는 10년 동안 진나라의 운하 공사를 맡아 300리 길이의 대규모 운하를 완성했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주는 황제에 업적으로 보답한 것이었다.

또 진나라 목공은 이웃 초나라의 인재였던 백리혜라는 사람이 변방을 다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데려오기 위해 많은 재물로 모셔 오려다가 이런 소식을 알면 초나라에서 오히려 더 크게 기용할까봐 한 사람의 노예 값에 불과한 ‘검은 양가죽 다섯장을 주고 데려왔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오고대부(五羖大夫)라는 고사를 낳기도 했다.

이처럼 출신을 가리지 않는 인재등용, 특히 상대국의 유능한 인재를 과감히 불러들이는 용인정책으로 진나라는 어느 나라들보다 부유한 강국으로 변해갔다. 특히 군사력은 다른 나라의 열 배 정도로 커져 천하통일의 시초를 다듬게 된 것이다.

나라가 부국 강성을 원한다면 인재를 기르고 모셔오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자치단체도 지역을 위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타지역 출신이라고 외면해서는 안될 일이다.

문불여장성에서도 長城이라는 외벽을 쌓고 그렇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 할 일이다. 장성의 손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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