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천하를 손해보면서 한 사람을 이롭게 할 수야...”
[편집국 칼럼] “천하를 손해보면서 한 사람을 이롭게 할 수야...”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11.3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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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권세를 쥐락펴락하는 왕위를 물려줌에 있어서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려준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권이나 황제의 지위는 대부분 그 직계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아주 먼 수천년 전에 오히려 아들이 아니라 능력을 갖춘 인재에게 나라 통치를 맡기기도 했다. 이를 일컬어 선양(宣揚)이라 했다.

중국의 상고시대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순 임금이 우 임금에게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면서 아들이 아닌 능력있는 통치자에게 주었다. 이 사례는 어느 왕조의 교체나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매 분쟁시 마다 떠올려지는 고귀한 사례가 됐다.

요 임금은 아들 단주가 어리석어 천하를 이어받기에 모자란 것을 알고 있어 능력있는 사람을 발탁해 정권을 넘겨주고자 했다. 요 임금은 민간에서 홀아비로 지내던 순을 발탁, 20년 넘게 그를 교육시키고 정치와 사회를 익히도록 만들어 살아생전에 그를 황제의 자리에 앉힌다.

그러자 단주 태자의 측근들이 나서서 어째서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느냐고 항의한다. 그 때 요임금이 남긴 교훈을 역사가인 사마천은 ‘사기’에 이렇게 적었다.

“만일 단주에게 천하를 넘겨주면 천하가 손해 보고 단주 한 사람만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순에게 천하를 넘겨주면 천하가 이로움을 얻고 단주 한 사람만 손해를 볼 뿐이다. 때문에 결단코, 천하가 손해보고 아프게하면서 한 사람만 이롭게 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 사마천은 ‘終不以天下之病而利一人’(종불이천하지병이리일인)이란 명언을 남기게 된 것이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무능력한 아들에게 권좌를 물려줌으로써 만백성과 천하를 아픔으로 몰아넣는 어리석음을 경계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된 순임금 시절에는 ‘모든 백성들이 밭의 경계를 서로 양보하고, 모든 미풍양속에 있어서 모두 웃 어른을 양보하게 됐다’는 뜻의 양반양장(讓畔讓長)이라는 고사를 만들어 냈다.

순임금 이전에는 백성들이 밭 한 고랑을 사이에 두고 서로 간에 ‘내것 네것’ 다투며 살았으나 성군이 나타나면서 서로 양보하는 사회가 됐다고 적고 있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당시에 한 뼘 밖에 안되는 논밭 한 고랑이라 할지라도 소중한 가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웃간에 밭 경계를 사이에 두고 양보하며 살았다는 뜻이다. 가장 좋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일컬어 ‘밭고랑 양보’라고 간명하게 비유한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사마천의 지혜가 엿보이는 일화다.

마침 미국에서도 대통령 자리를 둘러싼 인수문제가 연일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여전히 선거 패배를 시인하지 못하고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뒤늦게야 현실을 자각하고 정권 인계를 시사했다.

아무리 물려주고 싶지 않지만 민심은 이미 그를 떠났다. 정치가가 민심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런 자에게 “떠날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이여!”라고 외쳐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욕심은 혼자만의 것이지만 민심은 천하의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정책 교체와 여야 정권 교체를 분명히 밝힌 조 바이든 대통령당선자는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새 내각의 일부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명한 내각의 성격을 한마디로 설명했다.

“이 사람들은 나에게 내가 듣고 싶은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들어야 할 말을 해줄 사람들입니다”라고.

그러자 지명을 수락한 내각의 한 사람인 헤인스 정보국장 내정자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를 향해 말을 받는다.

“당선인님, 우리를 지명한 건 당신이 아니라 국민이며, 그 국민을 잘 섬기라는 뜻인줄 알고 수락한 것입니다. 설령 내가 당신에게 하는 말이 당신을 불편하고 곤란하게 할지라도 저는 결코 진실을 말하는 것을 피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수레를 이끄는 사람에게서나, 수레를 같이 미는 사람에게서나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자세를 엿보게한다.

‘나에게 아첨 따위는 하지마라’고 내각에 말하는 대통령이나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다’는 내각에게 든든함을 느낀다.

다만 시작과 끝이 다르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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