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영조 임금, 통한의 눈물
[편집국 칼럼] 영조 임금, 통한의 눈물
  • 장성투데이
  • 승인 2021.01.11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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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죽음을 어찌 내가 즐기어 하였으랴"

우리는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위선자를 가려내기 위해서’, ‘과거를 거울로 미래를 예견하기 위해서’...

다 옳은 얘기다. 역사를 좋은 본보기로 삼으려는 자세들이다.

그런데 반대로 ‘과거를 거울 삼아 권력 유지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단정한다면 어떨까?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그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진전시키는 데 있다.’

역사는 분명 과거의 일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현재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여 내일을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데 이론이 없을 듯하다. 그 ‘대비한다’는 그것이 나만의 미래냐, 만인의 미래냐가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은 어떤가.

오욕의 역사와 한치도 다를 바 없는, 낡은 역사를 반복하는 우매한 민족이 돼버렸다.

세계에서도 가장 영리하다는 한국 민족이 역사를 배우면서도 같은 사건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민족으로 전락했다. 오히려 과거를 거울삼아 비슷한 방법으로 권력 쟁탈을 노리고 권력을 유지해 나가는 기술을 배우려 들고 있다.

세상이 AI시대로 바뀌는 이 시기에도 ‘권력 앞으로’를 부르짖으며 나라를 소용돌이에 빠지게 만들었던 1천년 전, 오백년 전의 붕당정치가 생생히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2021년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면 조선시대를 영욕으로 점철케 했던 붕당정치나 세도정치가들의 작태와 하나도 다를바가 없다.

나라를 두 조각으로 분열시켜 외세의 침략을 눈 뜨고 당하던, 그러면서도 그들의 이익만을 위해 끝까지 권력에 아부해왔던 매국노와 권세가문들의 행태가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오직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상황 논리와 나의 이익에 반하는 자들이면 무조건 배척한다는 사람들이다.

절대 권력으로 비춰지는 조선의 왕까지도 그들의 붕당 패거리 논리로 농락했던 사실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가. 사도세자를 죽인 붕당정치의 검은 그림자가 이 시기에도 반복될 수 있음을 어찌 모르는가.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번영의 시기로 손꼽을 수 있는 때가 영조(1694~1776), 정조(1752~1800) 시대다. 그것은 영.정조가 가장 정치다운 민본정치를 펼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영특한 군주였던 영조마저도 친 아들인 사도세자를 국본의 자격이 없다고 단정하고 잘못을 단죄하기 위해 쌀 뒤주에 가뒀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아들을 8일 동안 물 한 모금 주지 않은 채 굶겨 죽게 만들었다. 그 이유가 붕당의 틈새 깔려 왕이 아들을 죽게 만든 비극 아니었던가.

노론과 소론, 남인 등으로 갈갈이 찢겨진 당시의 관료들이 영조 임금의 한쪽 눈과 귀를 가리고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왕세자를 배척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왕을 앉히기 위해 치밀하게 각색한 각본 때문이었음을 어찌 깨닫지 못하는가.

영조가 아무리 훌륭한 군주였다할지라도 붕당에 휘둘려 아들을 죽인 어리석은 왕이었다는 손가락질은 외면할 수 없다. 얼마 전 밝혀진 사도세자 비문에서 영조는 ‘직접’ 썼다는 것을 강조하며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자신의 어리석음과 비통함을 이렇게 적었다.

“오호라, 이는 누구의 허물인고 하니 짐이 교도를 하지 못한 소치일진대 어찌 너에게 허물이 있겠는가? 오호라 , 13일(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죽은 날)의 너의 죽음을 어찌 내가 즐기어 하였으랴 , 어찌 내가 즐기어 하였으랴...”

아들을 죽인 아비, 왕세자를 죽인 왕으로 기록되는, 아마도 역사에 유일한 왕이 바로 영조였다.

잘못된 붕당정치는 그렇게 왕을 수렁에 빠트리고 한 나라를 뒤흔들었다.

만약 조선왕조실록에 2020년을 기록한다면 ‘역병이 휩쓸던 2020년 경자년은 똘똘 뭉친 사헌부가 그들의 수장인 대사헌을 수호하고 권력집단으로서 위세를 굳건히 하며 조정에 당당하게 버티던 한해’로 규정하지 않을까.

2021년 신축년 벽두부터 권력을 둘러싼 정당의 삐걱거림이 요란하다. 사가들은 올 한 해를 어떻게 규정할까. 기록의 말미에 ‘권력의 틈새에서 신음하던 백성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는 조항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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