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간 백기완 선생!
[편집국 칼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간 백기완 선생!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1.02.22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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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싸움이 어떤 싸움인 줄 아는가

이것은 사람잡는 끔찍한 반목숨과 참목숨의 맞짱이다.

촛불을 드시라

이 싸움은 ‘빼앗은 것도 내 것’이라는 지긋지긋한 거짓과

가진 것이라곤 알통뿐인 피눈물의 맞짱이다.

촛불을 드시라

그렇다 이 싸움은

나만 잘살겠다는 살인적 구조적인 탐욕과

아니다 너도나도 일을 하고 너도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살자는 인류의 꿈, 이적지 없었던

아름다운 비주(창조)의 한치 물러설데없는 맞짱이라”

<중략>

한치 흩트러짐 없이, 어긋난 정의에 대창으로 내리 꽂는 비수같은 정신일도의 칼질이다.

독재의 썩은 뿌리가 다시 발아하기 시작할 무렵인 2016년 12월, 박근혜 타도를 외치던 백기완 선생의 출정가 ‘아, 한바탕이여 몰아쳐라’중의 한 대목이다.

그는 그날도 굴곡의 역사 한 복판에 서서 그렇게 외쳐댔다.

“이 싸움은 네가 이기고 내가 지는 실랑이가 아니다.

썩은 늪을 발칵 갈아엎는 한바탕이요

짓이겨진 역사를 바르게 잇는 한바탕이요

사람이 돈의 머슴이 되어버린 잘못된 문명을

왕창 뒤엎어버리는 한바탕”

살아있는 민중의 화신이었던 그분이 2월 15일 하직했다.

아마도 그곳에는 그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스승이면서 동지였던 백범 김구 선생과 문익환 목사님도 기다리고 계셨을 지도 모른다.

1933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뒤 해방을 맞은 13살에 서울에 내려왔다가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에 의해 강제로 분단되자 여덟 식구가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삶을 살았다. 1948년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뵙고 그 고결한 뜻에 감동받아 갈라진 집안을 하나로 잇고자 통일운동일 시작하여 평생을 반민주, 반독재, 반노동, 반통일 세력에 분연히 일어나 앞장서며 일신을 불살랐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 개헌반대 투쟁에 앞장서며 장준하 선생과 함께 ‘민족학교’를 열어 항일민족시집 등을 발간하며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복돋아줬고 통일문제연구소를 열고 민주통일문제연구소(민통련)을 창립해 민중문화운동의 거점 역할을 다했다.

그 유명한 ‘명동 YW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전두환의 보안사로 끌려가 죽음 직전까지 가는 참혹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의 삶은 정권과 권력을 가진자들의 하나의 표적물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미행과 감시, 도청, 탄압, 구속, 고문 등으로 점철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문에 달궈진 용수철처럼 누르면 누를수록 강하게 튀어 올랐다.

죽음이 심장을 짓누르던 시절에도 꿋꿋이 버티며 살다간 백기완 선생도 세월은 이기지 못한 탓이리라.

그토록 바라던 이 땅의 통일이 언제 이뤄 질지 모르지만 분명 더디게 올지라도 그 새벽은 오고야 말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있기를 기원한다.

“썩어 문드러진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 갈아서 돌려라. 나는 죽지만 산자여 따르라. 나는 죽지만 살아있는 목숨이여, 나가 싸우라는 거다. 고문관들이 ‘저 새끼는 정신적으로 말려 죽여야 한다’고 했어. 한번은 보안과장이 ‘제발 그 입좀 다물 수 없냐’고 그러더라고. 내가 ‘죽기 직전인데 왜 입을 다무나’라고 소리쳤어. 그럴 때 혼자서 웅얼대면서 죽어도 죽을 순 없다. 들이받고 죽어야 겠다면서 허공에 쓴 시가 ‘묏비나리’야. 입으로 써서 천장에 새겼어. ‘나는 비록 싸우다 죽지만 사랑하는 너희들은 앞장서 나가라’ 이거야.”

박정희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다 투옥되어 고문을 받던 순간 입으로 웅얼대면서 천장에다 남겼던 이 시는 마침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사하는 근간이 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그는 가셨어도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사가 백기완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강요된 침묵, 강요된 죽음에 끝까지 뿌리치려는 몸부림으로 일관했던 그의 긴 발자취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접어야 할 때가 됐다.

그의 위대한 흔적을 잊지 않으려, 이렇게 간략히라도 되새기는 일이 한가닥 조의(弔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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