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새가 나무를 골라 앉는 것인가 나무가 새를 골라 앉히는 것인가?
[편집국 칼럼] 새가 나무를 골라 앉는 것인가 나무가 새를 골라 앉히는 것인가?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1.04.05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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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가운데 사람과의 만남은 선택의 철학에 있어서 최고봉이다.

인간에 대한 선택은 먼저 겉으로 나타난 가치를 보고 이뤄진다. 실체가 드러나는 경우는 대부분 훗날이다. 내면의 중요성을 알고는 있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워낙 미로 같고 때로는 색깔 있는 위장 가면을 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흔히 큰 인물을 거목이라 부른다. 굵은 줄기에 무성한 잎을 달고 있는, 그리하여 인간에게 평화로운 그늘을 만들어주고 유용한 재목으로 쓰임을 갖는 나무를 일컫는다.

거목에는 새들이 빼곡히 깃들어 앉는다. 때로는 한쪽 날개를 밀어 넣기도 어려울 정도로 새들이 켜켜이 앉는 경우도 있다.

이를 빗대어 공자는 ‘조즉택목이어니와 목기능택조호(鳥則擇木 木豈能擇鳥乎)’라고 했다.

새가 나무를 선택하여 앉을 수 있을지언정, 나무가 새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 문장이 양금택목(良禽擇木)이다.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앉는다’라는 뜻이다.

공자가 치국의 도를 펼치기 위해 천하를 떠돌며 유세하던 중 위 나라에 이르러 위의 대부와 이치를 논하다가 전쟁만을 이야기하자 제자들과 짐을 싸 들고 “새가 나무를 택하지, 나무가 어찌 새를 택할 수 있겠는가”라고 박차고 나온 장면이 그려진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모셔야 할 군주를 스스로 가려서 섬긴다는 말이다. 공자 이렇게 수많은 선비가 이러한 신념 아래 모였다가 자기 정치철학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선비들은 철학이 달라 권력과 자리를 기꺼이 박차고 나왔고 불의에 맞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 생육신과 사육신은 대표적인 사례다.

지조 때문에 때로는 죽음을 불사하고 사약을 받아마셨고 때로는 절해고도에 위리안치되는 비극을 당하기도 했다.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사형 다음의 극형으로, 차마 죽이지 못하고 살기 힘든 외딴곳으로 유배하는데, 유배객이 머무는 집의 지붕 높이까지 가시나무를 둘러치고 그 안에 유배객을 유폐시키는 형벌이다. 죄인을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키고 개구멍 같은 작은 틈으로 먹을 것을 넣어 주어 목숨만을 연장하도록 했으니 참으로 가혹하고 처참한 형벌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시대의 대부분의 새는 재목이 주변과 어우러져 땅에 평화를 드리울 수 있는지를 판단하여 나무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나타난 나무의 위세를 보고 남들과 함께 떼 지어 작은 깃이라도 틀 둥지를 찾아 나선다. 그저 그 안에 깃들면 먹잇감이 있으리니, 또는 어깨라도 펼 수 있으리니 라고 생각한 탓이다.

그뿐만 아니다. 자기 주관으로만 평가하여 나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베어 없애 지구상에서 폐기해야 하는 대상으로 찍어내기 안달이다. 그 반대편에 있는 재목은 아예 병충해에 걸린 폐목이라 칭하고 이 세상에 없어져야 할 잡목으로 바라본다.

하루에 천 리를 난다는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물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도 않는다고 했다.

설령 봉황의 큰 뜻을 따라가진 못할망정, 듣도 보도 않는 이야기를 나의 잣대에 올려놓고 상대를 헐뜯는 참새는 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문제는 나무를 선택하는 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에도 있다.

어느 날 여당의 유력 인사였다가 이상이 맞지 않는다며 그 자리를 박차고 하루아침에 야당으로 진로를 바꾼 재목 같지 않은 재목도 있다. 현재 국민의 힘을 이끌고 있는 김종인 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철새가 아니라 철목인 셈이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 선거는 1년도 안 남았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다. 마치 자석의 양 날개 끝처럼 줄을 잇는다. 두 패로 나뉘어 서로 죽일 듯 으르렁대고 있다.

거목의 큰 그림자를 찾을 수도 없거니와 거목을 찾아가는 새들의 현명한 선택도, 바른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사방천지에 패거리 군단을 이뤄 상대 비난과 발목 잡아 헐뜯기 바쁜 선거판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제도의 본 모습인지 회의감이 드는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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