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성인이다!] 신용진 한국광기술원장/남면 분향리 출신
[나는 장성인이다!] 신용진 한국광기술원장/남면 분향리 출신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1.04.12 10: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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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발전하는 고향, 장성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죠”

한국 光산업의 선구자...장성 촌놈 자부심 갖고 뉴욕대학 유학

레이저 연구에서 핵의학물리로 전환...한국광기술원 광주 유치 공헌

“동네가 번뜻번뜻 바뀌는 느낌입니다. 장성은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도시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향수 가득한 눈으로 보니까 그런가요(웃음).”

고향 얘기를 꺼내자마자 환한 미소로 답하는 신용진(66) 한국광기술원 원장.

광산구 첨단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광기술원 원장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신 원장은 출향 인사 가운데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다.

신 원장의 고향 마을은 근무지에서 자동차로 15분 이내 거리인 장성 남면 분향리다. 지금은 거리로 치면 도시나 마찬가지지만 옛날엔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던 자갈길로 갈 수 있는 농촌이었다. 그래서인지 분향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코흘리개 시골 촌놈으로 살던 추억이 가장 값지다. 마을에서 학교 가는 길에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개천을 건너거나, 길가의 밭에서 목화를 따 먹던 일들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장성 읍내와의 추억도 쏠쏠하다. 어릴 적부터 놀러 다니던 외가 집인 정성읍 미월당, 태극당약방 등은 재미난 놀이터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스스로 장성 촌놈임을 자부하며 언젠가는 흙을 만지며, 고향 땅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신 원장은 사업을 하시던 선친의 뜻에 따라 대부분의 형제들처럼 3학년까지만 시골에서 다니다가 광주로 전학, 광주서중, 광주일고를 거쳐 고려대 물리학과에 입학한다. 그때만 해도 생소한 물리학과였지만 원대한 꿈을 안고 진학했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1982년 미국 뉴욕대학교로 유학, 약 9년 동안 세계적인 석학들과 마주하는 기회를 갖는다. 이 기간이 바로 한국 물리학이 국제 수준으로 성큼 성장하고 광산업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한국의 야심찬 청년 유학생 신용진은 뉴욕대에서 미 해군성의 장학금으로 레이저를 이용한 미사일 방어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 이학 석사를 취득한다. 하지만 더 깊은 연구에 들어가고 군사기밀에 가까이하게 되자 첨단 군사기술의 유출을 꺼려한 미국이 시민권도 없는 한국인 청년 신용진을 연구에서 배제하고 나섰다. 그러자 신 원장은 어쩔 수 없이 원자핵 물리학으로 전환, 핵의학 박사를 취득한다.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덕분에 당시 최첨단 과학인 핵자기공명현상을 의학에 적용한 MRI를 한국인 최초로 연구하고 개발한 개척자라는 이력도 붙었다.

귀국 후, 서울에서의 연구소 생활을 접고, 1994년부터 조선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계나 국가기관과 끊임없는 연구, 교류를 거듭하던 중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국가 전략산업의 설계를 돕게 된다. 김 대통령이 부산의 신발, 대구 섬유, 창원의 기계 등 전통산업을 육성해오던 것을 4대 전략산업으로 거점화하여 광주에는 첨단 신산업인 광산업을 육성하면서 부터였다.

“당시에 광주에 광산업을 육성한다니까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죠. ‘탄광도 없는 지역인데 대도시에 광산업 진흥이라니...’라며 의아할 정도로 광산업에 무지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글로벌 시대와 국가 미래를 읽을 줄 아는 큰 사람이었다. IT 산업이 지배할 것을 예감하고 광통신 등 광산업이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될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런 첨단산업만이 호남을 먹여 살릴 것으로 보고 호남에 뿌리 내리도록 만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조선대 교수였던 신용진은 박광태 국회의원(산자위원장), 광주과기원 백운출 교수 등과 함께 호남의 미래 지역전략산업으로의 광산업 기틀을 설계한다.

신 원장은 이렇게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 등을 독려하며 2년여 동안의 설계 끝에 광주광산업육성전략을 확정하고 법을 통과시키며 법인을 설립하는데 참여하여, 마침내 만 20년 전인 2001년 4월 12일, 역사적으로 광주에 한국광기술원이 공식 국가연구기관으로 개원한다.

오늘날 신 원장이 맡고 있는 한국광기술원은 이렇게, 그의 땀과 설계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남지역에 최초로 본원을 둔 국가연구기관인 한국광기술원장을 맡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그가 자갈밭을 개간하며 걸어온 여정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광산업은 자동차 산업처럼 밖으로 드러나는 분야가 아닐 뿐, 레이저, LED, 렌즈, 광센서 등 빛의 원천을 연구하고, 광통신, ICT융합, 디스플레이, 조명, 에너지, 자율주행 등 첨단산업 모든 분야에 깊이 활용되는 융합산업입니다. 무궁무진한 미래 먹거리 근간인 것이죠”

전통적으로 열악한 호남 산업의 구조적 개선에 광산업이 꽃피도록 하고 지원하도록 뒷바라지해주는 한국광기술원이 국가기관으로 광주에 설립된 것은 지역민에게 크나큰 복이라고 강조한다.

“장성은 광주 위성도시이면서 편백 숲이 울창한 곳으로서 치유산업, 관광체험 산업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국가기관인 국립심혈관센터가 들어오면 장성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이밖에도 장성의 풍부한 먹거리를 기반으로 한 전원주택 개발 등도 좋은 대안이라 생각합니다”

‘문불여장성’ 청백리 박수량 백비가 늠름하게 지키고 있는 청렴 고을이란 것이 늘 자랑스러웠다는 신 원장은 황룡강 꽃강이 뉴스를 탈 때 한걸음에 달려가고픈 충동을 참을 수 없어 자주 찾아간다고 말한다.

지난해 가을 장성서 새롭게 재배한 황금사과를 맛보면서 해마다 달라지는 고향에 새삼 긍지를 느꼈다는 신 원장은 장성에 친척들과 살았던 집이 있고, 고령 신씨 가족묘가 있는 한 영원한 장성인 일 수 밖에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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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 2021-04-12 15:00:43
원장님,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