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본 적 있는가?"
[편집국 칼럼]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본 적 있는가?"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1.05.03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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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에 진실로 고마움을 느낀 적이 언제였습니까?”

누가 이런 물음을 던지면 필자는 ‘바로 어제였다’고 답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28일 아침, 황룡면사무소를 방문했다.

그런데 만 하루 뒤에 황룡면사무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황당하기 그지없어 즉시, 29일 오전에 선별검사소에 나가 검체하고 하루 뒤에 나온다는 통보를 기다렸다.

보건소 관계자에게 ‘전날 황룡면사무소를 방문했다’고 설명을 했더니 ‘자가격리가 필요할 것 같다’는 권유에 사무실에서 퇴실하여 집에서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아, 이를 어쩌나, 양성일까 음성일까?, 다른 주변 사람들은 어찌되는 거지?”

그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가고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코로나에 걸리면 폐 섬유증이 심해져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이 이루말할 수 없다는데, 죽을 것인가 살 수 있을 것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예방에 좀더 신경을 쓸 것을...”

그러나 모든 건 지나간 일이었다.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가 어제 오늘 만난 사람들은 누구누구였지? 내가 다녔던 현장은 무탈할까?”

혹시라도 나로 인하여 지인들이 코로나 파동을 겪거나 식당이나 사무실이 난리가 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보건소 검체결과 통보를 기다리는 24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것도 처음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련의 솔제니친은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소설에서 영하 27도의 수용소에서 보낸 일을 적고 있다.

죽 한 수저라도 더 먹기 위해 밥 그릇을 핥고 있는 모습, 빵을 도둑맞을 까봐 침대 시트에 넣고 바느질하여 숨기는 모습을 통해 삶의 의지를 놓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자기 위안이나 작은 행복으로 위안받는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장소는 고립된 수용소 안이다.

따뜻한 집이 아니다.

이 소설은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을 때, 억압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게 되는지, 그 때는 어떤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지 보여 준다.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 지 절실히 느끼게 해 준다.

“만약 코로나 음성 판정이 나온다면 직장 동료들과 밝은 햇살을 맞으며 신에게 감사드리는 점심을 먹겠는데...”

절박함이 통했는지 다행히도 30일 보건소로부터 코로나 음성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하지만 나 스스로부터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생각이다.

‘나’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오후엔 보건소로부터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2주간의 격리기간 동안 절대로 밖에 가가면 안된다는 것과 지켜야 할 사항을 엄수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네 당연히 그래야지요”

점잖은 초등학생 답할 수 밖에 없었다.

2주, 14일간이라. 참 황당하고 긴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인생에 처음 주어진, 내 의지로 선택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24시간을 느껴보며 예전에 자유롭던 시간의 고마움을 체감해 보고 싶다.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냉정히 돌이켜 보고 싶다.

지난 26일 한국 배우로서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씨의 수상 소감이 잔잔하게 가슴을 저민다.

“난 눈에 띄지 안아도 돼요, 큰 보석도 필요 없고요, 엄청난 의상도 싫어요, 난 공주가 아니고 그냥 나 답고 싶을 뿐이예요”

세계적인 후원사들이 시상식을 빛내 달라고 초호화 의상 수백벌을 후원하고, 손이 무거울 정도의 보석을 제공한다는데도 일언지하에 거절한 나이 74세의 윤여정이 더 우아하게 보이는 이유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은 남에게 보여지는, 그렇게 화려하고 빛나는 보석은 아니다.

세계적인 배우로 스타덤에 오른 윤여정이 ‘인생이란 특별한 게 아니고 나 답게 사는 것 아닐까요?’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같은 소인들에게 나 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함께 있어 준 주변에 고마움을 느끼며 사는 것 아닐까?

다음 점심 때는 국밥 한 그릇이라도 기쁘게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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