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아! 김홍빈 대장, 차가운 빙벽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가
[편집국 칼럼]아! 김홍빈 대장, 차가운 빙벽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가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1.07.26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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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빈.
김홍빈.

 

“지금 김 대장은 차가운 빙벽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습니다. 신속히 구조에 나서주길 바랍니다. 1%의 희망이라지만 강인한 사람이기에 충분히 버텨내고 반드시 귀환하리라 믿습니다”

등반 도중 실종된 김홍빈 대장 부인의 절규였다. 광주에서의 절규가 히말라야 얼음 빙벽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1%의 가능성이 이렇게 크게 느껴진 것도 처음이었다.

보통은 1%라면 불가능이다. 하지만 열 손가락을 잘리고도 살아 돌아온 초인 아니었는가.

어느 새벽이라도, ‘김 대장이 살아있다’는 실낱같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하지만 거센 눈보라와 얼어붙은 빙벽은 그를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고 있다.

김 대장은 지난 18일 오후 4시 58분께(현지시간) 세계 최고봉 히말라야 브로드피크(8047m급) 완등 소식을 전한 뒤 하산을 하던 중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을 통과하다가 해발 7900m지점에서 실종됐다. 조난된 브로드피크는 중국과 파키스탄에 걸쳐 있다. 김 대장은 파키스탄 쪽에서 브로드피크를 등정한 뒤 조난됐으며 구조 과정에서 중국 쪽 절벽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난 당한 김 대장은 5시 55분께 위성전화로 구조 요청을 했으며 이 신호를 받고 러시아구조대가 그를 발견, 발견하고 15m 정도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더 이상 끌어올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김 대장은 스스로 등강기를 이용해 빙벽을 오르기로 결정했고 이어 등강기를 이용해 올라오다 다시 추락했다. 크레바스를 지지하던 사다리가 쪼개지면서 얼음 계곡 깊숙히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색 당국에 따르면 구조 실패 이후 김 대장의 위성전화 신호가 포착됐는데 위선 전화가 있는 곳은 해발 7000m로 조난 지점으로부터 900m나 아래 쪽이었다.

영하 50도 얼음 빙벽에서 80도 각도의 수직 벽을 타고 900m나 추락하여 며칠 동안 살아있기란 상상할 수 없다.

모든 정보가 비극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잠시라도 버틸 수 있다면 철인 김홍빈이었기에 가능한지 모른다. 하늘이 그를 품어 안아 무사 귀환을 간절히 빌고 또 빈다.

초인적 의지의 인간 김홍빈.

광주가 가진 극한 상황의 절대 지존.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는 초강자.

그를 형용할 무수한 단어들이 많지만 그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언젠가 모임에서 김 대장을 초청하여 강단에 모실 때 물은 적이 있었다.

“이렇게 강한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러자 천하의 김 대장도 수줍은 듯이 말했다.

“오줌 누고 지퍼 올리는 일이 젤 어려운 일이요~”

그랬었다.

등반 도중 동상에 걸려 손가락을 잘라야만 했던 김 대장은 손가락으로 세세하게 해야하는 웃옷에 단추 잠그는 일, 소변 보고 바지 지퍼 올리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들이 자신의 소중한 것에 대해 얼마나 무시하며 살고 있는지, 작은 감사함에 얼마나 무감각하며 살고 있는지를 일깨워 줬다.

김 대장은 지난 1991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194m)를 단독으로 등반하던 중 조난을 당해 다행히 살아 돌아오긴 했지만 심한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다 잃게 됐다.

그 때 동상에 걸려 잘라내야먄 했던 썩어가는 손가락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처참했다. 스틱과 로프를 사용해야하는 등반가에게는 치명적이었지만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인공 팔을 만들어 부착하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여 세계 최고봉들을 차례로 등정해 나갔다.

장애인으로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기록을 보유한 김홍빈 대장.

열 손가락을 잃고 30년 동안 등정해온 그 빛나는 봉우리들은 청록색 하늘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전설로 남게 됐다.

그가 남긴 도전의식은 한국인의 상징이자 호남인의 기백이기도 했다.

그는 항상 장발에 더벅머리였다. 왜 이렇게 머리를 자르지 않냐고 묻자 “몸의 온도를 항상 고온으로 유지해야 나중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머리카락으로 보온 효과를 유지하며 미래 빙벽 등반을 대비한 것이었다. 그는 특별히 바쁠 때를 제외하고 아무리 높은 빌딩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법이 없었다. 근육은 단련한 만큼 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이제 그를 볼 수 없다니...

차가운 빙벽 사이 깊은 크레바스 얼음 속에서 희미해져가는 기억의 끈을 놓치 않으려는 김 대장의 사투를 그리며 간절한 염원을 담아 보낸다.

1%가 아닌 0,1%의 희망으로라도 버텨주기를…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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