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뺄 용기보다 칼을 집어넣을 용기가 있어야!
칼을 뺄 용기보다 칼을 집어넣을 용기가 있어야!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1.08.2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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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논쟁이 회자되고 있다.

당사자 간 싸움이 일단 봉쇄된 상황이지만 칼 싸움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전망이다.

발단은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된 황교익 씨 문제를 두고 이낙연 전 대표와 이재명 지사 진영간 논쟁에 불이 번졌다.

이 전 대표 측이 이를 두고 “일본 도쿄나 오사카 관광공사에 맞을 분” “막장이 따로 없다”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 말에 격분한 황씨는 이 전 대표를 향해 “나를 죽이자고 덤비는 이낙연의 공격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낙연의 정치적 생명을 끊는 데에 집중하겠다”라고 공격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친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윤근영 의원이 “이유 불문, 그만둬야 한다”고 말렸다. 대의적으로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그러면서 “싸움에서 칼을 뺐는데, 그냥 넣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칼을 빼는 용기보다 다시 넣는 용기가 더 존경받을 때도 있다”라며 칼춤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칼은 그저 칼일 뿐인데 쓰는 자에 따라서 대해 용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식탁 위의 편리한 칼에서부터 생명을 구하는 칼, 사람을 죽이는 칼, 나라를 구하는 칼 등으로 쓰인다.

칼의 영웅담을 빌리자면 저 유명한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의 우국 충절을 상징하는 달빛 어린 칼, 권력을 가운데 둘러싸고 있는 무수히 교차하는 칼, 그리고 권력의 주인공이면서도 칼질을 두려워하는 선조의 어리석음과 고민...

그 모든 것이 녹아있는 <칼의 노래>는 책 머리를 이렇게 시작하여 감동을 선사한다.

“그해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 살아갈 것이다.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 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비장함이 느껴지는 최고의 문장이다.

누가 감히 칼의 노래를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칼의 여운이 세월의 화살을 타고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다시 오백 년의 터널을 지나 21세기로 돌아가자.

정치인이든 범부이든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어린이든 성인이든,

불교든 기독교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디에 속하든 개인으로서 존엄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에 의해, 나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개인의 행복이 무참히 도륙당한다면 가당한 일일까?

큰 권력이든 작은 권력이든 그 칼자루를 두고 사생결단을 내려 모두가 야단이다.

불가에서 윤회중생의 세계는 고와 락의 무한한 반복 연결고리라고 말한다.

상대를 내 입맛대로 까 발려 비인간으로 매도함으로 잠시의 락(樂)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곧 이어 고(苦)의 쓴맛이 옴을 어찌 생각 못하는가.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다. 좋음과 나쁨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으며, 천상과 지옥도 금줄 하나 건너에 있는 세상일 뿐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바로 내가 배려받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렇게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깊은 심호흡으로 잠시라도 상대의 입장에서 멈춰 바라본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소름끼치는 난장판이 되지는 않을 텐데...

연유를 접어두자.

욕망의 칼을 집어 넣어두자.

상대 저격의 칼은 피 냄새 나는 칼이다.

칼은 칼을 부르기 마련이다.

사사로운 감정을 위해 칼을 빼는 것이 아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칼을 빼 들 때, 역사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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