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아프칸과 흥남 철수…역사는 반복된다
[편집국 칼럼]아프칸과 흥남 철수…역사는 반복된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1.08.30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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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흩날리는 추위 속에 코흘리개 아이를 업고, 목도리를 둘러쓴 채 불안에 떨며 인파 대열을 따라나서는 6·25 당시 사진 한 장면이 크로즈업 된다.

연일 뉴스 첫 머리를 장식하는 아프칸 사태의 비극이다.

대통령 궁이 함락당한 뒤 중무장한 군인들이 장악한 텅 빈 시가지와 카불공항에 폭발물이 터지고 불안에 떠는 국민들의 모습이 보는 이를 슬프게 한다. 그런 와중에 온 가족을 이끌고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사살되거나 혹은 탈출에 성공한 모습들이 지구촌의 이목을 집중케 한다.

사람과 짐짝으로 가득차 숨조차 쉴 수 없는 화물 수송기 공간에 널브러진 사람들의 아수라장 사진, ‘내 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철조망 너머 군인들에게 아이를 던지는 모습은 국제 뉴스의 시선을 모으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젖먹이 아이를 안은 채, 인연을 맺은 한국행을 선택해 비행기에 어렵사리 몸을 싣고 마침내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한편의 영화같은 내용이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어렴풋이, 어디선가 본 듯한, 한번쯤 겪었을 법한 영상의 연속이다.

외래어를 빌리자면 흔히 데자뷰(deja vu)라고 한다. 처음 해 보는 일이나 처음 보는 대상, 장소 따위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그 데자뷰가 너무도 생생히 맞물린다.

어디서 봤을까?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전설같은 이야기 속에서?

일반인들은 그 실상을 영화 ‘국제시장’에서 너무도 생생히 알 수 있었다.

영화 속 미군의 흥남 철수작전은 6·25 한국전쟁의 어떤 비화보다도 인간적이고 감동을 주는 실화였다. 그 뒤에 이어지는 KBS 이산가족 찾기 특집과 상봉 소식은 눈물 없이는 그대로 볼 수 없는 휴먼스토리 그 자체였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7살 때 헤어진 형제와 부모를 찾게 된 상봉 소식은 그들이 쏟아낸 눈물만큼 온 국민들의 눈물도 빼앗아 갔다.

그런데 이같은 일들이 21세기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인간은 왜 동족끼리 살육을 일삼는 유일한 동물일까?

왜 그럴까?

정답은 바로 권력이다.

인류학자 엘리아스 카네티는 그의 유명한 저서 ‘권력과 군중’에서 그렇게 분석했다.

카네티는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3개를 지목하고 있다.

첫째는 자신들의 사고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언어와 문자를 만들어 낸 것이고, 둘째는 사회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사후세계를 설정하고 선과 악의 기준을 제시하는 종교를 만들어 낸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무리를 통제하기 위해 권력이라는 장치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네티는 인간은 둘 이상의 군중이 모이게 되면 질서가 필요한데 인류 역사 초기에는 개인의 힘, 즉 개인의 무력이 질서를 지배했지만 그것이 차츰 거대해지고 조직력이 필요해지면서 권력이라는 장치가 필요하게 됐다고 보았다.

한치도 틀림없는 사회현상의 분석이다.

카네티는 그러한 권력의 시작을 마을공동체의 리더 출현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사례를 들었다. 쉽게 말하면 마을 이장이 선출되는데도 인간관계, 족벌관계, 혹은 금전관계 등 모든 관계가 근간이 되어 이장 권력을 잉태한다고 봤다.

그것이 더 커지면 시장 군수 선출이 되고, 더 커지면 국가 권력인 대통령이 되는 것이 순서다.

우리가 옆에서 보면 너무나도 잘 보이는 권력의 속성과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오직 권력 장악만이 목적이며 나머지는 장애물로 여겨진다.

멀리서 본 아프칸 사태와 탈레반의 권력 장악과정, 그리고 엑소더스는 우리의 얼마전 과거와 한치도 다르지 않는 모습이다.

1950년 12월 15일, 북한 공산치하를 벗어나기 위해 흥남항구를 탈출하여 죽기살기를 각오하며 남한으로 넘어온 그 영혼이 70년 세월을 뛰어넘어 아프칸 탈출 인파에 크로즈업된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얼마전 과거다.

역사는 시공을 초월하여 반복되기 때문이다.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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