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1.09.27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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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형모 편집국장.
백형모 편집국장.

 

“21세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영웅(英雄)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의 사람들이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큰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영어로 남성에게는 히어로(hero), 여성에게는 히로인(heroine)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자로는 영(英)과 웅(雄)은 개념이 다른 두 단어의 합성어로 본다. 총명한 것을 영, 담력이 뛰어난 것을 웅이라 했다. 영은 문(文)에 해당한 것이며, 웅은 무(武)에 해당한다고 봤다.

총명하고 계책에 뛰어나며 영명하고 식견이 넓고 기지가 출중한 사람을 영이라 할 수 있고 힘이 세고 용맹하게 행동하며 지혜롭게 판단하는 것을 웅이라 했다. 때문에 영은 승상이 될 수 있고, 웅은 장군이 될 수 있었다.

영웅은 흔히 전쟁을 통해 출현한다.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영웅들이 나타나고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이들이 명멸하는 역사는 인류에게 난세를 어떻게 헤치고 나가야 하며 어떻게 처세해야하는 지를 알려준다.

영웅호걸의 대명사로 불리는 한신(韓信) 장군은 평민의 집에서 태어나 지략과 용맹함으로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훗날 유방은 항우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한나라를 건국한 뒤 “대업을 이루기 4년 전 10만 대군의 항우에게 맞선 우리 군대는 고작 4만에 불과했다. 수적으로 불리했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한초삼걸(漢初三杰)’이라고 불리는 소하, 장량, 한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자평할 정도였다. 유방은 황제 즉위식에서 세 영웅들의 특징, 즉 소하의 행정력, 장량의 계책, 한신의 전략을 치하하며 이들의 공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공로로 한신을 초나라 왕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한신은 막강한 군사력과 뛰어난 지략 때문에 초나라 왕으로 책봉되어 임지로 떠난 지 9개월 만에 유방으로부터 다시 반란죄로 체포된다.

체포된 한신의 울분은 우리를 서늘하게 한다.

“날쌘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는 잡아먹히고, 높이 나는 새를 잡으면 활은 곳간에 처박히고, 적국을 멸하고 나면 충신은 죽임당한다더니, 천하가 평정되니 내가 잡혀 죽게 되는구나!”

이른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고사성어의 탄생이다.

80년대, 찌그러진 자화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문열 선생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우리를 지배했던 엄석대가 생각난다.

암울했던 자유당 시절, 권력의 기세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시대였다. 6학년 급장을 했던 엄석대는 공부도 잘하고 다른 아이들 통솔 능력도 남달라 선생님의 신뢰를 듬뿍 받는 아이였다. 하지만 석대는 공부 잘하는 같은 반 아이의 대리 시험지를 통해 1등을 해왔던 터였다. 공부 는 잘 했지만 힘이 없던 아이가 엄석대의 위엄에 눌려 자기 이름 대신 엄석대 이름으로 답안지를 교묘히 제출해왔던 것이다. 뒤늦게 이같은 부정시험의 비밀을 안 담임선생님은 엄석대에게 매질을 하며 정직하게 살도록 강요한다. 동시에 학년마다 급장을 도맡았던 ‘석대 왕국’도 허무하게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엄석대 왕국의 그림자는 또다른 모습으로 투영된다. 몰락하는 영웅의 자화상이다.

비뚤어진 양심에 매질하던 선생님은 세월과 더불어 변하면서 국회의원이 되어 권력에 아부하는 또다른 권력자로 변해버렸다. 엄석대 역시,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교묘하게 피해가며 양지를 따라가면서 갖은 영화를 누리게 되지만 이들의 결말은 보나마나다.

그런데 21세기를 시작하고도 20여 년이 지나 또다시 일그러진 영웅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권력이라는 검을 쥐기 위해 안달인 사람들이다.

실력으로 쓴 답안지가 아닌 남의 답안지, 부정한 답안지를 이용하여 급장의 위세를 떨친 엄석대처럼 말이다.

5년 동안 나라의 통치를 맡길 대선을 5개월 여 남긴 상황에서 급조된 답안지를 들고나온 급장 엄석대를 TV에서 자주 본다. 전략과 전술로 용맹무쌍함을 보여주는 장수이긴 하지만 난세를 헤쳐나갈 지혜가 부족한 영웅들이다. 이들은 오직 권력만을 목표물로 삼고 있다.

이제, 말솜씨와 쇼맨십으로 무장하여 백성을 현혹시키는 TV 화면을 뚫고, 아집과 편견으로 가득찬 SNS 통속을 나와 미래를 성찰할 수 있는 집단지성이 필요할 때다.

어떤 통찰력과 혜안으로, 어떤 인물을 골라야 할 지는 자기 몫이다.

그 이후에 우리가 맞이할 행복과 불행의 세계도 자기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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