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 위패 논쟁으로 4백년 웬수라니…
죽은 사람 위패 논쟁으로 4백년 웬수라니…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1.10.0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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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림 역사상 있을 수 없는 ‘퇴계 이황의 위패를 불태우는 사건’이 지난 1일 유림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현장인 경북 안동의 호산서원에서, 전통을 목숨보다 중시하는 유림들이 전통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한국 유림사에서 퇴계 이황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존’의 위상이다. 그런데 퇴계의 후손이, 그들의 사당에서, 조상 영혼의 상징인 위폐를 내려 불태우는 '소송(燒送)' 의식을 펼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4백여 년 전이다.

흔히 병호시비(屛虎是非)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병호시비란 1620년 퇴계 선생을 모신 여강서원(1573년 건립·1676년 사액을 받아 호계서원으로 개칭)을 건립하며 선생의 제자인 학봉 김성일(1538∼1593)과 서애 류성룡(1542∼1607)을 배향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위패를 상석인 퇴계의 좌측(좌배향 또는 동배향)에 둘 것이냐를 두고 촉발된 논쟁이다.

이후 서애 제자들은 병산서원을 중심으로 뭉쳐 병파라 불렀고, 학봉 제자들은 호산서원을 중심으로 뭉쳐 호파라 불렸다. 이들이 충돌하는 사건을 병호시비라 부른다.

병호시비의 두 주인공은 선조 임금이 (임진왜란 앞두고) 왜인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자 그들의 징조를 파악하기 위해 다른 학파 출신의 이들을 밀사로 보내는데 귀국 보고에서 서애 유성룡은 “왜구들이 밤낮으로 칼을 갈고 있어 필연코 침략할 것이다.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고 보고했으나 학봉 김성일은 “그럴 징후가 없다”고 안일하게 보고하여 조선을 폐허로 만든 비극의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후손들은 아랑곳 않고 조선 역사에서 벼슬을 지내며 양대 문벌로 자리잡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1620년 1차 병호시비에서는 당시 서애의 제자이자 대학자였던 우복 정경세(1563∼1633)가 '벼슬의 높낮이로 정해야 한다'며 영의정을 지낸 서애의 손을 들어주면서 병파의 승리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학봉의 후학들은 스승이 서애보다 4살 더 많고 학식도 뛰어나다며 반발했으나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해 마지못해 따라야 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세력을 불려 나갔다.

이윽고 1796년 당시 영남의 4현으로 불리던 서애와 학봉, 한강 정구, 여헌 장현광의 신주를 문묘에 배향하는 운동이 벌어졌는데 이 때 나이를 우선으로 위패를 안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승리, 2차 병호시비에서는 호파가 위세를 떨친다.

하지만 이때부터 병파는 10여 년 동안 호계서원에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된다.

1812년에 이른바 3차 병호시비가 일어나는데 호파가 확실한 우세를 다지기 위해 대산 이상정을 추향하면서 두 학파가 충돌, 호파가 승리하자 안동 유림은 학봉(호계서원)과 서애(병산서원·屛山書院)로 갈라졌다.

서원들이 결별하며 서로 볼일 없는 듯하던 유림들은 200여 년이 흐른 뒤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자 4차 논쟁을 벌이게 된다.

호계서원은 대원군 서원 철폐 때 헐렸다가 1878년 강당을 재건축했는데 안동댐 건설로 1973년 지금의 임하댐 아래로 옮겨졌다.

그러나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습기가 자주 올라와 호계서원 건물 훼손이 우려되자 지역유림과 호계서원복설추진위원회에서 이전과 복원을 요청했다.

이에 경북도는 2013년부터 이전 사업을 추진, 2017년부터 50억을 들여 호계서원을 복원해 2020년 12월 준공했다.

그리고 올 10월 3일 첫 추향제를 모시기 직전 위패 자리를 두고 4백년 된 논쟁이 다시 불꽃 튀는데 이른바 4차 병호시비다.

퇴계 이황의 종가 후손들은 주벽인 퇴계 선생이 갈등과 분쟁의 원천으로 지목받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며 아예 위패를 태워 없애는 소송을 결정했다.

호계서원은 이제 스승인 퇴계의 영혼이 사라지고 제자들이 좌우에 앙숙이 되어 버티는 형상을 면치 못하게 됐다. 머리가 없고 몸통에 팔다리만 덩그러니 붙어있는 형상이다.

그놈의 명예가 뭣 이길레 400년이 지나도록 원수로 맞붙는다는 말인가?

형식과 겉치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감축드리옵니다”만 조아리다 나라를 말아먹는 조선의 망국비화를 잊었단 말인가?

우리 주변에서도 또다시 병호시비가 일지 말란 법이 없다.

21세기, 4차산업 혁명의 물결을 눈앞에 두고 펼치는 명예 논쟁의 종말을 당부한다.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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